미국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추진에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태도에서 비교적 신중한 입장으로 바뀌었다. 제이크 시워트 백악관 대변인이 26일 클린턴의 방북 결정 시기와 관련 “1개월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 고위관리가 김정일(김정일) 위원장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수출 포기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적인 일정을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특히 시워트 대변인이 북한의 인권 문제도 언급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북한 중앙통신이 이날 한·미 군사훈련을 “대화 상대방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필립 리커 미 국무부 대변인이 “주한미군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지금까지는 내년 1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클린턴이 방북한다면 다음 달 중순 베트남 방문 전후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달 초에는 선발대가 평양으로 떠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회담 후 백악관과 국무부의 분위기는 다음주 초로 예정된 미·북 미사일 전문가회담에서 북한이 구체적인 카드를 내놓을 것인지 여부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쪽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클린턴의 방북 전 북한의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 내려는 전략적 압박용일 수 있다. ‘수퍼파워’ 미국 대통령인 클린턴의 방북 자체가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최대의 ‘선물’이므로, 사전에 미사일 문제 등에서 그만한 대가를 보장받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클린턴 방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이 구체적인 성과가 담보되지 않는 한 클린턴의 방북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클린턴은 서둘러 방북하다가는 냉전의 마지막 장을 허무는 공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혹을 붙이고 물러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일부 상·하원 의원들이 최근 클린턴에게 방북을 만류하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담에서 방향이 잡힌 미사일 타결 원칙이 실무 회담에서 마무리된다면 클린턴의 방북은 예정대로 가시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만일 실무회담의 성과가 여의치 않으면 클린턴의 방북이 무산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25일 서울에서 전화로 방북 성과의 대강을 클린턴에게 보고한 데 이어 이번 주말 클린턴과 만나 실질적인 논의를 할 예정이다.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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