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아인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전 국무부 비확산 차관보

이번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을 둘러싸고 빚어진 ‘북한 핵 위기’는 1994년의 ‘북핵 위기 상황’때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들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통해 압력과 협상을 적절히 구사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막는 등 전략을 먼저 세워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우선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의 지속은 스스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는 주변 관련국들의 조율된 압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 메시지를 북한 지도부에게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평양과의 모든 접촉과 협조를 끊을 필요는 없다. 또 한국·일본·중국·러시아는 북한을 고립시켜 붕괴할 때까지 쥐어짜는 전략을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에 평양을 포용하되, 특히 현금 제공과 비(非)인도적 분야 지원에서 분명한 제한을 설정하고 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이 제한이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북한은 핵에 관한 자신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은 병든 경제를 회생시킬 희망을 앗아가 버릴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압력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토록 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평양은 진정으로 미국의 군사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우라늄에 의한 핵 프로그램이 제거됐다는 확신을 갖기 전에는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만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안보 우려 사항을 다루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 스스로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리라고 상상하기란 힘들다. 결국 미국·북한간에 어떤 형태로든 협상이 요구된다.

이런 협상에서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를 발판으로 간주하고 그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그런 접근법은 북한이 우라늄 프로그램으로 인해 처벌을 받아야지 보상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하다.

지금의 새 환경에서 미국은 종전에 이뤄진 거래의 요소들을 재고할 이유가 있다. 미국은 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제거를 철저히 검증할 수단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이 최대한 새 합의를 지키게 하도록 이후의 수순(手順)을 이어 나가려 할 것이다. 새 협상은 북한의 주권과 안보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를 다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북한의 단기적 도발을 막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부시 행정부로선 급할 것이 없고, 현재 이라크 문제로 바쁘며, 우선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길 기다릴 것이다. 이 기간 중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요원들을 영변에서 추방하거나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등의 단계를 취해 압력을 강화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중국·러시아·일본·한국은 모두 북한에 그런 조치는 북한의 이익에 부합되는 해결책을 막을 뿐이라는 점을 경고해야 한다.

미국과 관련국들은 또 궁극적으로는 핵 프로그램의 포기야말로 경제적으로 북한에도 이득이 된다는 ‘터널 끝의 빛’을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미국은 제네바 핵합의에서 미국이 약속한 사항과 관련해 북한이 경솔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 것을 피해야 한다. 가령 중유 공급을 계속하면서도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든가, 제네바 핵합의가 폐기됐다고 공식 선언하지는 않으면서 추가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그런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추진해 온 데 대한 국제사회의 불쾌,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대한 북한의 긴장, 외부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절박한 상황 등은 모두 북핵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이용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 주변국들의 확고한 태도와 연대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가 스스로 쓸 수 있는 수단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현실주의와 기꺼이 협상하려는 자세, 그리고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피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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