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국이 엊그제 도쿄에서 열린 회의에서 대북 중유(重油)공급 문제에 관해 합의하지 못한 것은, 북핵(北核) 공조체제의 이상징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위험한 일이다. 한·미·일 사이에 엄청난 의견차이와 내부분란이 있는 것처럼 비쳐질 경우, 북한은 이같은 상황을 역이용하려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3국이 요구해 온 ‘신속한 북한의 비밀핵개발 포기’라는 목표 달성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 제공될 11월분 중유를 실은 선박은 지난 6일 싱가포르를 출발했지만, 한·미·일 3국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공해상에 머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공해를 떠도는 이 선박이야말로 표류하는 대북공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하기 위해 이달분 중유공급부터 중단해야 한다는 미국측 주장이나, 예정된 중유공급을 중단할 경우 섣부른 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는 한·일의 입장은 모두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전술적인 협의에서도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없을 만큼 3국 사이에, 특히 한·미 사이의 골이 넓고 깊다는 데 있다.

이같은 불신과 혼선의 큰 책임은 김대중 정부에 있다. 현정부는 말로는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지만,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 ‘북핵 해결과 남북경협의 병행추진’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대북사업들이 그 가장 큰 이유다. 엊그제 끝난 남북 경협추진위 회의에서 우리 측은 회의 초반 북핵문제의 해결을 촉구했지만, 말만 그랬을 뿐 결국에는 12월말 개성공단 착공 등에 합의해 주었다.

이래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그리고 북핵문제의 외교적·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낮게 만들어 자칫하면 엄청난 위기로 번지게 할 수도 있다.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현정부가 이런 위험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북 교류사업을 눈딱 감고 밀어붙이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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