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는 낯선 손님들을 맞았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피랍된 486명의 납북자 가족 대표 5명이었다.

이들은 ‘납북자 가족들의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박경서(朴庚緖) 상임위원 등과 20분간 면담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이들이 전한 인권 침해의 실상은 참혹했다. 연좌제와 감시, 고문 등으로 숨죽인 채 살아온 세월이었다.

지난 1967년 납북된 ‘풍복호’ 선장 최원모씨의 아들 최성구(崔成九·61)씨는 전북의 명문고를 졸업했다. 최씨는 아버지의 납북 이후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에 나섰지만 납북자의 아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기업은 없었다고 했다. 몇 년을 술로 보낸 그는 생선장사로 생업을 이어왔다고 했다.

지난 1969년 납북된 ‘복순호’ 어부 임판길씨의 동생 임선양(林善良·57)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과 말하는 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납북자 가족 대표들은 말했다. 지난 1972년 신고없이 이사를 했다는 이유로 군산경찰서에서 12일간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고통이 인권위를 통해 치유될지는 미지수이다. 인권위법은 최근 1년 이내에 발생한 사건에 한하여 진정 접수를 받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박 상임위원은 “시효(時效)가 끝나지 않은 사건은 위원회가 조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의 적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바로 그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경질 방침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정부 제1 지향이 ‘민주·인권국가’”라고 밝힌 바 있다. 납북자 가족들도 이 정부 들어 명예를 회복한 많은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처럼 권위주의 하에서 인권 침해로 고통 받아온 사람들이다.

보상은 놔두고라도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가족의 생사 여부 확인과 송환 협상에 나섬으로써 인권국가의 면모를 보일 때이다.
/ 윤슬기·사회부 기자 cupidmo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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