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圭
/고려대 교수·북한학

지난달 하순 북한의 농어촌을 1주일간 돌아보고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 주민들 거의가 10여년간에 체격이 왜소화돼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인종학적으로 원래 북방 주민들은 남방에 비해 체격이 크고 강인한 골격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은 주민들의 영양실조를 초래했다. 주민들은 지방질이 부족한 초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날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자연히 평균신장이 줄게 됐던 것이다.

그러자 김정일은 전국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키 크기운동’을 지시했는가 하면 9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이 솔선수범해 ‘하루한끼 먹기 운동’까지 전개했던 때도 있었다.

이러한 식량난은 94년 김일성 사후(死後)부터 더 혹심해지면서 해마다 아사자가 속출했고 먹을 것을 찾아 만주로 탈출하는 사태로 번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동족으로서 말 못할 비애와 안타까움을 느꼈다.

평양에서부터 남포시와 평안북도의 정주, 그리고 묘향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변으로 보이는 농촌마을과 주민들의 모습은 광복 직후의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을 다시 보는 듯해 이상한 느낌을 갖게 했다.

지은 지 수십년이 된 듯한 연립주택형의 농촌마을은 을씨년스러웠고 어둠이 깔리는데도 불빛 하나 안보였으며, 유리창 대신에 비닐로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그 흔한 개나 닭들도 안 보이고 간간이 염소와 오리떼만 보일 뿐이었다. 전력이 부족해 가로등이 없는 컴컴한 고속도로변으로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하고 부녀자들의 대부분은 등에 개나리 봇짐을 했으며, 수제(手製)처럼 보이는 소형리어카에 무엇인지 담아 끌고 가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그래선지 고속도로는 주행선 밖으로 잘 닦인 인도가 붙어 있었다.

해가 져도 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동네 어귀에 모여 앉아 있는지, 왜 어두운 밤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북한 안내원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혹시 난처해할까봐 혼자만 속으로 이유를 생각했다. 아마 그 때가 음력으로 9월 보름쯤이라 달이 밝았고 그리 춥지 않아 집안보다는 밖이 더 좋아서 그런가 하고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방북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일반 주민들의 체격이나 신장이 상상 외로 너무나 빈약하고 왜소해 통일 후에 같은 민족의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생리적인 변형으로 우생학적인 염려마저 들었다.

방문한 곳곳마다 일부러 악수를 청해 잡았던 손마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온기(溫氣)라고는 거의 없었다. 창광 유치원의 꼬마들, 식당의 의례원들, 농촌의 아저씨들, 상점의 아주머니들 모두가 그랬다.

바람이 불면서 쌀쌀했던 날씨 가운데서도 무늬가 박힌 비로드 비슷한 옷감으로 만든 한복만을 입고 열심히 기념물을 설명해 주었던 50대 여성 해설원은 보기에 민망스러웠다.

그동안 남한의 TV에 비춰진 북한 사람들의 건실한 모습들은 특수계층의 특혜 신분자일 뿐만 아니라 지난번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응원단의 ‘미녀’들도 선발된 특수층인 것이다. 정주 농촌에서, 남포의 길거리에서, 평양 시내에서 만난 일반 주민들은 그들과는 전혀 별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김일성은 일찍부터 통치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이른바 ‘혁명전통’이라는 명목하에 1930년대의 항일 빨치산 투쟁사를 각급 학교 교육과정에서 강조했다. 항일무장투쟁사를 강화시키려면 자연히 일제의 만행과 함께 일본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을 주입하고 ‘왜놈’이라는 표현으로 비하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인들은 지금 건장한 체구에 키가 큰 젊은이들이 돼 있고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욕하는 ‘왜놈’처럼 왜소화돼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북한은 체제선전을 위해 평양에 거창한 기념물들과 묘향산의 웅장한 국제친선박물관, 그리고 곳곳에 건립된 김일성의 호화별장에 국력을 낭비하면서도 농어촌 생활환경의 개선은 고사하고 주민들의 배마저 굶게 만들고 있음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수령복을 잘 타고 났다”면서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노래를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치고 있는 나라가 우리 민족이라는 데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다.

지금 남쪽에선 영양과잉으로 성인병이 문제라면 북쪽에선 영양실조로 체구의 왜소화가 진행되고 있어 언젠가의 통일조국 미래에 심각한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인권적인 의미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식량지원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남한이 건전한 가치관의 결여에 의한 부패와 퇴폐문화라면 북한은 경직된 가치관의 집착에 의한 인간성의 질식화가 이뤄지고 있어 통일을 위해서는 상호조화와 협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