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관계가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중대 진전은 물론이거니와 수교와 연락 사무소 설치, 그리고 테러·인권·실종 미군 신원확인 등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진전은 페리 프로세스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반목에서 벗어나 미·북 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6월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잡았던 대북협상과 대화의 주도권이 미국과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이 경우, 우리의 당사자 원칙과 남·북관계 개선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문제시되는 부분은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 관한 사항이다. 이번 올브라이트 방북 성명이나 기자회견에서는 명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휴전협정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는 북·미간에 주요 협상의제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 논의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미국과 중국의 보장하에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2+2’ 방식이 무시되고 미·북 평화협정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우리의 국익에 엄청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 심오한 문제는 미·북 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미국의 대 한반도 및 동북아 전략에 대한 본질적 수정이다. 미·북 수교가 이루어지고 적대관계가 청산될 때, 동북아에 있어서 미국의 주적(주적)개념에 커다란 혼선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이미 미·북 수교 이후의 동북아 전략 구상에 대해 은밀히 작업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적 전략구상은 결국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에 대한 전반적 논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미·북 관계 개선을 낙관적으로만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통미봉남(통미봉남)의 재현 우려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방위적으로 북한의 개방·개혁을 도모하고 국제사회의 건설적 일원으로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수교를 포함한 북·미 관계 진전은 우리의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한국과 미국간의 명시적 역할분담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은 남북한 당사자간 문제로, 대량 살상무기와 미사일 문제는 미·북간 협상의제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4자회담에서 남·북한이 주역이 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2+2’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전략적 역할분담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미·북 수교 이후에 대비한 장기 전략 계획이 요청된다. 미·북 관계 추이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에서 벗어나, 미국의 전략적 구상과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에 대한 미래 지향적 진단과 그에 따른 대응방안의 모색이 절실하다.

특히 주한미군의 감축에 대한 용의주도한 대비, 한·미 동맹의 미래 위상 재점검, 그리고 다자간 안보협력체 구상 등 보다 전향적인 정책 발상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급류를 탄 미·북 관계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는 냉전해체라는 전 지구적 추세의 한반도적 표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내정치 구도로 보아 북·미 관계 개선이 한·미 및 남·북 관계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통미봉남이란 기존의 수세적 관성에서 벗어나 중·장기적 시각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모색에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문 정 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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