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基

북한은 요즘도 매일같이 미국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북한이 중대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그들이 미국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지난달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보면, 미국의 입장과 태도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너무나 동문서답(東問西答)식이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과연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될지 의문스럽고, 10년 전의 ‘북한 핵 위기’가 되풀이될 것 아닌가 걱정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확약하며, 북한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핵 개발 문제를 미국과 대화로 해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한은 특히 ‘불가침 확약’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고 ‘선제공격’을 새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북한을 ‘핵으로 압살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제공격론은 북한을 특정하여 대상으로 지목한 일이 없고, 더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 자신이 지난 2월 방한 때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명백히 밝힌 이래 이 입장은 계속 반복 확인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불가침조약 언급은 전세계에 마치 북한이 미국의 침략위협하에 놓여있는 것처럼 오인시키기 위한 선전술이자, 그들의 남침 가능성을 억지(抑止)하는 한·미 군사동맹 관계를 와해시키려는 것이며, 그들이 오래 전부터 해오던 ‘주한미군 철수’ 요구와도 맞물려 있는 것임을 익히 아는 미국이 귀를 기울일 턱이 없다.

물론 부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이 가장 위험한 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도록 용납하지 않겠다”고 여러번 말했다. 부시는 실제로 북한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을 굶기면서 지배층은 잘 먹고 대량살상무기나 개발하는 나라”라는 것이 그의 북한관(觀)이다. 북한의 과거 테러 경력도 물론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1996년 이후 2002년까지 190만t의 식량(6억2000만달러 상당)을 북한에 원조했다. 작년에만 35만t(1억달러), 올해에는 15만5000t(4500만달러)을 지원했다. 미국은 지금 북한에 대한 최대의 인도적 원조 제공 국가가 돼 있다.

북한이 유치원에서부터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건 말건, 미국은 “굶어죽는 어린이는 공산주의가 뭔지 모른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은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라. 그러면 수교까지 포함한 여러 가지 지원을 해줄 태세가 돼 있다”는 신호를 거듭 보내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후에 미국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일이지만, 미국은 10월 중순 제임스 켈리 특사를 북한에 보내기 전까지도 대북 대화가 잘 풀려나갈 경우에 대비하여 경제 원조와 궁극적 수교까지 포함한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라면 발가벗으란 말이냐’며 집착을 버리지 않지만, 그걸 끌어안고 있는다는 것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미국을 향해 스스로 공격의 표적이 되기를 자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지난달 29일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세계의 지원을 전망하면서, 오죽 답답하면 “아이들은 우라늄을 먹고 자랄 수 없다”고 말했겠는가.

북한은 미국과 부시를 더 열심히 연구해서, ‘엄격한 부시’와 ‘관대한 부시’ 가운데 후자와 빨리 사귀는 것이 스스로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기(氣)싸움을 벌이거나 동문서답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때는 아니다.
/ 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