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한과 미국 3국 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흔히 쓰는 비유가 인질극이다. 북한이 남한의 안보를 ‘인질’로 미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려는 상황이 인질협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사태는 그동안 단지 수사적 표현으로만 사용되어왔던 인질극 비유가 우려할 수준으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핵개발을 실토한 후에도 인질범이 인질과 경찰을 다루듯이 남한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인질범은 자신의 유일한 무기가 인질과 경찰에 가할 수 있는 무력이기 때문에 호전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행동 또한 인질범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과 유사하다. 인질범과 협상하는 경찰은 일단 인질범과 대화를 시도하지만 항상 인질범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무력진압의 기회를 엿본다.

미국이 한편으로는 남한의 안전을 위해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대북한 무력제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모습과 비슷하다.

앞으로의 인질극 재발을 억제하기 위해 현재의 인질범을 굴복시키려는 경찰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북핵 문제를 단기적인 미·북 양자 간의 갈등이 아닌, 전 세계적인 핵확산의 방지를 위한 최후 저지선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을 대변하고 두둔하는 듯한 우리 정부의 언행도 문제이다. 정부가 인질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인질범과 인질 사이의 동정심 형성, 즉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지난 1973년 스톡홀름 은행 인질사건 당시 인질로 잡힌 여성이 인질범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된 데서 유래한, 일종의 이상 심리현상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가진 인질들은 인질범에게 쉽게 양보하지 않는 경찰을 원망하고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아예 인질범측에 가담하기도 한다.

현 시점에서 인질극 비유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이유는 인질극 자체의 비극적 요소 때문이다. 최근 100여명의 인질이 희생된 모스크바 체첸 인질극에서 볼 수 있듯이 인질극은 비극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질극이 불행하게 끝날 가능성이 큰 이유는 인질범과 경찰 양측 모두 무력행사를 통해서만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확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질범이 인질극 초기에 의도적으로 인질의 일부를 선택하여 희생시키고 경찰도 다소의 인명 손실을 무릅쓰고 무력 진압을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질 입장에서 인질극이 비극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경찰이 인질에게 경고하지 않고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994년 북핵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필요하다면 한국과의 협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이번에도 미국의 일방적 선제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인질극형 핵 협상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 핵위기가 인질극 형태로 전개되는 것을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부터 인질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정부 스스로가 인질처럼 행동한다면 객관적인 상황과 관계없이 국민 전체가 인질극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우리가 인질이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가 북한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만약 부족하다면 단기간에 방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능동적인 외교를 통해 주변국, 특히 미국에 한국이 인질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경찰 활동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핵개발 문제에 관한 한 미국 이상으로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공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한·미 양국이 인질극을 벌이지 못하도록 이해를 같이하는 동등한 경찰로서 북한 핵개발 저지에 나서야만 대북 억제력을 최대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측 모두 동료 경찰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자제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조가 가능해진다./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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