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신미년의 한미(韓美)전쟁을 유발했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쑥섬 곁에 정박, 통상을 강요했을 때 그 배에 초대되어 승선했던 이가 있다.

지택주(池宅周)라는 당시 16세의 소년으로 아버지와 함께 승선하여 양식을 피로받았는데 “냄새가 고약하여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고 세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돛대가 두 그루 서 있고, 삼끈이 산발한 여자머리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했다.

평안중군(中軍=사령관)을 감금하는가 하면 위협발사한 포탄에 군민이 살상당하자 성난 백성들이 투석으로 대항했다.

원래 평양 투석군은 돌 잘 던지기로 소문나 전투에 자주 차출됐으며, 그 중 갑판에 나와 수심을 재던 선원이 이만춘(李萬春)이라는 장정이 던진 돌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다. 드디어는 시탄(柴炭) 실은 배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이를 셔먼호 선체에 부딪치게 하여 소각시켰던 것이다.

당시 평안감사 박규수(朴珪壽)는 셔면호의 대포 2문을 집무처인 선화당(宣化堂) 앞 뜰에 비치하고, 닻을 달았던 쇠사슬은 대동문(大同門)의 네 기둥에 걸어 평양 군민으로 하여금 양이(洋夷)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웠다.

그 후 이 셔면호의 잔해는 흥선대원군의 특명으로 한강 양화진 망원정 앞에 끌어다놓고 당시 야금장(冶金匠)이로 소문나 있던 김기두로 하여금 화륜선을 복원토록 했다.

외국군함에 시달렸던 대원군의 한풀이였다. 무고(武庫)의 구리와 쇠를 탕진하여 복원시킨 이 국산 제1호 화륜선의 진수식을 베풀던 날 대원군은 망원정에 자리잡고 한강 양언덕에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목탄 화력으로 기관소리가 울려퍼지자 환호성이 울려퍼졌으나 겨우 열 걸음쯤 움직이더니 털털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대원군은 고개를 무릎틈에 묻고 일으킬 줄 몰랐다. 그건 개화의 아픔을 앓는 한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셔면호가 화공(火攻)을 받아 잔해로 남아있던 바로 대동강 쑥섬 곁 그 자리에 다른 하나의 미국 함정이 수년간 자리하고 있었으니 1968년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당했던 미국 정보선 푸에블로호다.

셔먼호 소각 때 그러했듯이 미국을 증오하는 반미사상의 교육현장이 돼온 것이다. 그 푸에블로호가 얼마 전 켈리 미국특사의 방북을 즈음하여 딴 곳으로 옮겨졌다 한다. 이념에 대한 천재적인 역사 맞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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