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스펙터
/비확산연구소 워싱턴 사무소장·전 미국 에너지부 무기통제·비확산 담당 부(副)장관

미국과 동북아시아의 동맹국들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느라 애쓰고 있다. 이달 초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심적 원료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새 프로그램은 북한이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다른 한 가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려 했던 프로그램에 병행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새 프로그램은 아직 핵폭탄을 만들 만큼의 우라늄을 생산하기까지는 멀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폐기시키기 위해 협상할 시간은 아직 있다. 플루토늄 프로그램은 훨씬 더 다급한 우려 대상이다.

영변 핵시설에 의한 이 프로그램은 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됐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그때까지 핵폭탄 1~2개를 만들기에 충분한 분량의 플루토늄을 비밀리에 생산했으며, 이미 핵폭탄을 만들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지난 8년간 북한은 외관상 더 이상의 플루토늄을 생산하지는 않은 것 같고,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들도 가동이 중지된 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하에 놓여 있었다. 북한은 플루토늄 핵폭탄 4~5개를 더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영변에 갖고 있다. 그 플루토늄은 폐연료봉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것으로 핵무기를 더 만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가. 그것은 오로지 제네바 합의와 IAEA 사찰관들의 현장 확인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깼다고 비난하고 있고, 제네바 합의에 따라 가동 중단된 영변 원자로의 에너지 생산을 보상하기 위한 중유(重油) 제공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제네바 합의가 무효화됐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북한이 영변의 IAEA 사찰팀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북한이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미국의 다른 우려 사항들에 부응할 조치를 취하는 대가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미국의 경제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대타협을 하려 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1994년 5월 김일성은 북한의 핵 과학자들이 영변의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낼 때 IAEA의 사찰관들이 입회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북한이 그 이전까지 영변 원자로에서 얼마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지를 정확히 계산하려는 IAEA의 노력은 좌절됐다. 이것은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를 강화시켰고, 그 위기는 결국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해결됐던 것이다.

김정일은 아버지가 사찰팀을 배제시켰던 것을 성공적인 벼랑 끝 작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비밀리에 운영해왔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과감히 시인하면서도 IAEA 사찰팀을 영변에서 내쫓는 도박을 감행하지는 않고 있다.

이 점에서 북한은 위기를 피하려 하면서 미국(일본 및 한국)과 대화의 문호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대화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북한의 과거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완전히 추적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양쪽 모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영변 원자로와 플루토늄 추출 공장의 가동 실적은 사찰을 통해 확인돼야 하며, 북한이 94년에 추출한 플루토늄은 전량 IAEA의 감시하에 놓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큰 시설을 필요로 하는 플루토늄 프로그램보다 숨기기가 쉽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이 되고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실험실이나 시범 공장을 미국과의 타협 대가로 공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북한은 우라늄 농축 기술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사실에 바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은 그 기술로 다른 비밀 장소에서 우라늄 농축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이 진행되려면 현재 영변에서 이뤄지는 사찰의 지속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을 궁극적으로 완전 종식시키려면 훨씬 더 철저하고 포괄적인 사찰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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