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장 치열한 냉전 유적지를 21세기엔 평화의 텃밭으로 만듭시다. ”

21일 오후 비무장지대(DMZ) 속에 있는 강원도 철원 옛 북한 노동당사 터. 세계 민간단체(NGO) 리더 53명이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평화지대 선언문’을 읽었다. 곧 이어 아일랜드의 민중가수 프란시스 블랙(여·39)이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 ‘나는 간절히 원한다(There is something inside so strong)’를 선창하자 하나 둘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끊어진 산과 들에 통일을 염원하는 세계시민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들은 전날인 2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반(반) 아셈’ 시위를 가졌던 아시아·유럽 NGO리더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일정으로 철원의 을지전망대, 전적기념관, 철원 노동당사, 제2땅굴 등을 둘러본 이들은 “분단의 현장을 눈으로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며 “남북한 관계 개선과 통일에 세계 민간단체가 나서서 열렬히 지지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프랑스 노동단체 ‘아타크’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책임자 피에르 후세(54)씨는 부인 셀리 후세(47·아셈2000민간포럼 국제조직위원)씨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냉전의 산물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느낌에 착잡하다”고 했다.

이들은 오후 3시쯤 을지전망대에 도착하자 앞다퉈 망원경으로 북녘 들을 살펴보고, 경원선 최북단 역인 월정리로 가 폭파된 기차 잔해도 둘러봤다. 네덜란드 단체 ‘무기거래반대운동’의 마틴 브렉(38)씨는 주변 갈대밭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둘러보며 “확인되지 않은 지뢰가 많다는 사실에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제2땅굴 안으로 들어가며 이들은 하나 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 반핵단체 IPPNW의 지나 머핀스(여·40)씨는 “북한의 남침 위협이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버스 안에서 이들은 “귀국하면 오늘 봤던 걸 널리 알려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철원=채성진기자 dudmi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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