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권에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북한이 핵(核)을 개발하더라도 대북 지원과 협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보는가. 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보해야 할 쪽은 북한보다는 미국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북 장관급회담의 공동발표문과 김 대통령이 대선 예비 후보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입장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공동발표문은 북한 핵에 대해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한다’는 원론적인 한 마디를 언급하고 난 뒤 나머지는 대부분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개성공단 착공 같은 경협 추진 일정으로 채워져 있다.

북한 핵개발로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기존 질서가 근본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인 데도 대북 지원 성격의 경협은 오히려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범죄 행위’에 벌은커녕 상을 주거나 아니면 핵 위협에 벌써 무릎을 꿇은 격이다.

‘대화에 의한 핵문제의 해결’ 원칙도 북한이 요구하면 했지, 우리가 그토록 애걸하듯이 매달릴 것은 아니었다.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우라늄 농축시설의 보유 금지가 명백히 규정돼 있고 이걸 깨버린 것은 북한인데 왜 우리가 먼저 ‘대화’를 구걸해야 하며, 그런 대화가 실효성이 있겠는가? 나아가 대화로 해결하도록 ‘남북이 적극 협력한다’는 표현이 미국 등을 상대로 남북이 ‘공조’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는 없는지도 의문이다.

남북 공동발표문과 때맞춰 김 대통령이 전쟁은 물론 대북 경제 제재 가능성까지 배제한 채 오로지 ‘대화’만을 북핵(北核) 해결의 방법이라고 강조한 데서 현 정권의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 스스로 서둘러 모든 수단을 공개적으로 포기한 뒤 북한과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인가.

김 대통령과 현 정부의 태도는 결국 북한에 대해 추가 요구를 들어주는 방법으로 핵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는 북한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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