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항미원조)’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북한)을 돕는다’는 뜻의 이 말은, 50년 전 중국 인민지원군의 6·25 참전 사실을 일컫는 말이다. 1950년 6월 북한의 도발로 시작된 남·북한 전쟁에서 북한이 위기에 처하자, 마오쩌둥(모택동) 등 중국 지도자들은 김일성(김일성)의 다급한 지원 요청을 받고 대규모 인민지원군을 한반도로 파병, 3년간 전쟁에 참여했다. 이 달 25일이 ‘항미원조 50주년 기념일’이다.

중국인들은 지금 이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자 ‘승리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기념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인들의 논리에 따르면, 위기에 처한 사회주의 우방을 도왔기 때문에 ‘정의의 전쟁’이며, 건국 1년 만에 최강국 미국과 싸워 지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중국의 신문과 서점·인터넷 등에는 온통 ‘항미원조’란 4글자로 뒤덮이고 있다.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해방군보)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인민일보) 등은 본지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항미원조 특별란을 마련하고, 전사 회고와 노병의 경험담 등을 싣고 있다. 시나닷콤(신랑)과 신화(신화)망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도 약 한 달 전부터 인민지원군의 조직에서부터 출병, 전투과정, 참전 장병들의 회고록 등을 대거 게재하고 있다. 해방군출판사는 ‘상감령 대전(상감령 대전)’, ‘북위 38도선’과 같은 서적 및 화보집을 출판하거나 재판했고, 왕푸징(왕부정)의 대형 서점들은 6·25 관련 서적의 특별코너도 마련했다.

전쟁에 참여했던 노병들의 북한 방문도 늘어나고 있다. 츠하오톈(지호전) 국방부장을 대표로 하는 중국 정부 대표단이 오는 24일 북한을 방문하는 것 외에, 이미 지난 19일 항미원조 50주년 기념 노병방문단이 단둥(단동)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고, 쓰촨(사천)성의 인민지원군 노병들도 북한 방문길에 나섰다. 중국국제전략학회 등은 관련 세미나를 열고,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중국이 올해 유별나게 ‘항미원조 5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선전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 중국 지식인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소외·경시되고 있는 참전 노병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항미원조 열기’를 설명하기엔 부족한 것 같다.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 조성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외교의 중심추가 다시 북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일까.

/북경=지해범특파원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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