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여성들은 사회에서나 집안에서나 할 일이 많은 울트라 수퍼우먼이다. 가사는 물론이고 육아,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일까지 거의 여자 몫이다. 부업으로 가축을 기르는 일, 텃밭 가꾸는 일도 대체로 그렇다. 여자들이 ‘세대주’라고 부르는 ‘간 큰’ 북한 남편들은 밥짓고 있는 부엌의 아내에게 머리맡의 재떨이를 갖다 달라고 소리쳐 부르기 일쑤다.

제도적으로는 남녀평등권이 보장돼 있다. 여성은 ‘혁명을 떠미는 한쪽 수레바퀴’로 칭송되기도 한다. 교육과 노동의 권리도 평등해서 직업을 가진 여성이 많다. 그러나 단순사무직, 경공업공장, 협동농장 등 하급 직종에 편중돼 있어 가사와 직장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평등’도 짐이 되는 셈이다. 승진은 어려워 요직에 진출하는 숫자는 많지 않다. 다만 농사를 전담하는 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에는 여자가 많다. 95년 기준 농업부문에서 여성 인구가 53%를 차지해 남자의 수를 앞섰다. (통일교육원 권영경교수). ‘농사는 여자가 다 짓는다’는 말이 있다.

“여자는 결혼을 잘 해야 한다”는 관념은 보편적이다. 여자 쪽이 일체의 가구를 준비하는 함경도의 경우 어머니들은 딸이 나자마자 혼수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점차 연애결혼이 늘고, 중매는 줄어드는 추세다. 이혼은 비교적 자유로우나 주로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엘리트 여성들 중에도 이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연애시절의 이상이 무너진 부부가 겪는 갈등과 이혼문제를 다룬 소설(백남룡의 ‘벗’)이 88년에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혼녀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하고, 생계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북한여성들도 화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청년동맹조직 비서에게 주의를 듣기 때문에 살결물(스킨 로션) 정도로 만족하지만 직장을 구하면 중국산 로션과 파운데이션에 립스틱도 칠한다. 식량난을 겪으면서 나빠진 피부를 감추기 위해 화장이 좀 더 진해졌다. 머리도 기를 수 있지만 묶지 않고 늘어뜨리면 눈총을 받는다. 여자가 자전거를 타는 것도 북한 남자들 눈에는 꼴불견이다. 99년 중앙TV는 ‘바지입고 자전거 타는 여자’에 대해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성토한 적이 있다.

북한 여성들은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하다. 북한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은 ‘북한 여성들의 손 기술이 좋다’고 감탄한다.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스포츠 선수도 여성이 많다. 최근의 스타로 마라톤의 정성옥, 유도의 계순희, 역도의 이성희 등이 꼽힌다.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이 두드러졌다. 남자들에 대한 발언권도 그만큼 높아졌다. 군입대를 자원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중국 전역에 나와 있는 탈북자 중 여성비율은 75.5%에 이르며, 동북 3성 지역은 90.9%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단법인 좋은벗들). 이들 중 상당수는 인신매매나 강제혼 상태에 놓여 있기도 했는데 대부분 북한에 남은 가족을 위한 희생이다. 매춘 여성도 생겨나 ‘나라가 망하려면 여자가 먼저 망한다’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식량난 이후 출산이 장려되고 있다. 그러나 임산부가 낙태수술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 산부인과에서 마찰을 빚기도 한다. 피임은 전적으로 여성들의 몫이다. 콘돔은 고위층을 위한 ‘봉화진료소’ 같은 병원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피임기구는 거의 용수철 형태의 링으로 된 루프를 사용하는데 자궁 외 임신이나 부인병 등 부작용이 많다. 북한여성들은 제대군인 출신 대학생을 결혼상대로 가장 꺼린다. 장남과 여자 형제가 많은 집안의 남성도 좋아하지 않는다.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하거나 집안의 부담을 많이 지게 되기 때문이다. 고부 갈등도 남아 있다. 친정 부모를 모시는 경우도 많다.

평양시 월향동 여성독신자 합숙소에는 1500~2000명 정도의 독신여성들이 살고 있다. 일정 기간 머물다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끝까지 독신으로 남는 ‘늙은 처녀’도 많다. 조선중앙TV의 오복숙, 번역작가 이혜란 등이 이곳 출신이고, 탈북시인 최진이씨도 10년 동안 이곳에서 살다가 34세 때 결혼했다. 독신여성들 중에는 자생적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자대학이 없고, 여성학이나 가정학을 전공할 수 있는 과정도 없어 여자문제를 전문적으로 인식하기는 어렵다. 다만 요즘 들어 여성의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어 권위적이고 봉건적인 남성에 대하여 자아를 찾으려는 추세다.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들은 의대나 기초과학분야에 지원하여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과학원 유색금속연구소의 현영라 박사가 유명하다.

조선노동당의 여성당원 비율은 30~40%에 이른다. (아태평화재단 전복희 연구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경우 20%의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고 있고, 98년 7월의 제10기 대의원선거에서는 20.1%의 여성 대의원이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수치 이면의 실생활에서 북한 여성들은 아직 봉건적 ‘미덕’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김미영 객원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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