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적(조선적)! 이것은 일부 재일동포들이 가지고 있는 국적 아닌 국적이다. 광복 직후 패망 일본이 요구한 외국인등록 서류의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썼고, 그것을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적’은 일본적도 대한민국적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적(북한)도 아닌, 무국적과 동의어인 셈이다.

그런 연고로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재일 ‘조선적’ 음악인을 다룬 책이 나왔다.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가 그것이다. 저자는 재일동포의 국적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 ‘입국금지’를 만든 바 있는 박성미씨.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제목이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적’ 재일동포라는 고난의 상황을 음악적 창조력으로 승화시켜 낸 재일 음악인 김홍재씨의 삶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일본 음악계의 최정점에 올라선 김홍재씨의 현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과거를 조명하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지휘자 김홍재씨의 음악적인 측면과, 인간 김홍재씨의 실존적인 측면, 그리고 ‘조선적’ 재일동포 김홍재씨의 역사적인 측면, 이 3자를 적절히 안배하는 한편, 독자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서술의 강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쪽으로든 너무 깊은 천착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싱거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컨대 루이제 린저가 ‘상처입은 용’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 윤이상과 김홍재와의 만남과 각성을 다룬 3부 ‘용을 만나다’가 상대적으로 높고 깊은 긴장과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아마도 음악과 실존과 역사에 대한 윤이상의 고뇌에 찬 발언들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는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대단히 과묵하다는 인상을 주는 김홍재씨를 대신하여, 좀더 과감하고 심도 있는 해석과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전기 다큐멘터리 류의 글을 접할 때면, 늘 그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곤 하는데,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대입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이미 성공한’ 지휘자 김홍재씨의 자리가 아니라, 무국적자 ‘조선적’ 재일동포 김홍재씨라는 고통스러운 자리에 대입해야 할 것이다.

그의 상황은 남한과 북한과 일본 간의 관계가 맞물려 있는 다중적인 대립의 자리다. 그러나 대립이 없으면 애초에 화합도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열린 가능성으로서 다가오고 있는 우리 민족의 미래상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덤으로 붙어 있는 김홍재씨의 연주 실황을 담은 CD로 그가 혼신의 열정으로 연주한 음악들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마음 깊은 곳에서 기대하고 있을 깊고 입체적인 감동을 더한층 맞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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