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금년 신년사를 어떻게 낼지에 관해 국내 북한 전문가나 정부 당국자들은 작년부터 상당한 관심을 보였었다.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소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도 김일성 사후 체제정비도 끝났고 경제도 바닥을 쳤으니, 이제는 김정일 체제의 청사진을 내놓을 때가 됐다”며 “뭔가 새로운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보수성향의 전문가들은 대개 “북한 경제가 아직 비전을 제시할 정도로 호전된 게 아니다”며 “예년 수준과 별 차이 없을 것”이라고 점쳤다.

지난 1일 아침 9시부터 북한 TV와 라디오로 30분 남짓 방송된 노동신문-조선인민군-청년전위 등 3개 신문 공동 신년사설은 처음부터 김을 뺐다. ‘천리마 대고조’ ‘강성대국’ ‘고난의 행군’ ‘총진격’ 등 작년부터 해오던 말들이 되풀이됐을 뿐 새 내용이라곤 없었기 때문이다.

뉴밀레니엄의 첫 신년사설은 사회주의 체제를 위해 사상과 군대를 강화하고 경제건설에 매진하자는 요지로, 작년이나 그 재작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새로운 정책 제시나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울 만한 비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설은 “우리의 경제형편이 의연히 어렵다”고 실토하면서도 “남을 쳐다보지 말라”고 해, 외부와의 교류확대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은 독약”이란 말로 주민들을 단속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일부 당국자들은 이에 대해 “외부 사조 유입에 대한 우려가 많다는 것 자체가 외부와 문을 열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식한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으나, 이는 ‘기대섞인 해석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그동안 북한은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고, 체제 위협적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해온 게 사실이다. 지구촌이 새천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 시간, 북한의 시계는 여전히 20세기 중반에 멈춰서 있는 듯해 안타깝다.

/김인구 정치부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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