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8주년을 맞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94년 제네바 핵 합의는 현재 사실상 파기된 상태다. 지난 8년간 북한 핵문제는 물론 미·북관계를 규율해온 제네바 합의가 파산 상태에 이른 책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북한에 있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꾀해 온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사실상 합의의 틀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제네바 합의가 파기됐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직 한·미 정부는 물론 북한도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공식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 제네바 합의 파기의 순서와 방법, 그리고 그 이후(以後)의 상황에 대한 전략을 고민할 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 파기의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핵을 개발하지 않는다’라는 합의의 근본을 위반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비밀 핵개발 활동 및 합의 위반에 대해 사과하고, 그 전모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 관련 핵활동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각에서 벌써부터 ‘북한 비밀 핵개발과 미·북관계’ 등을 한데 묶은 일괄협상을 주장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이는 북한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돌아설 때는 벌(罰) 대신 상(賞)을 갖고 가는 악습을 되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네바 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틀’은 그 다음 단계에서 다뤄질 문제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합의준수 여부를 검증할 장치가 없다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었고, 북한 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미래로 미뤄버린 안이한 협상이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제네바 이후 체제’는 이 같은 치명적 결함들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그러나 지금 단계는 북한이 비밀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한·미·일 등의 외교력을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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