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대북(對北)사업의 핵심인물인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지난 20일 비밀리에 입국한 이후 보이고 있는 처신은 한마디로 해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귀국을 미루다 27일 만에 돌아온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스파이 흉내를 내듯 한 비밀입국까지 감행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김 사장이 귀국한 이후 공식적인 입장표명 한마디 없이 잠행(潛行)을 거듭하고 있다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현대그룹의 ‘4000억원 의혹’ 문제로 벌써 한달 가까이 온나라가 아우성인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내 알 바 아니다”는 식으로 외면하는 것은 대체 무슨 속셈에서 나온 배짱인지 모를 일이다.

김 사장은 귀국 후 회사에 잠깐 들러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금강산 특구와 개성공단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만간 모두 발표될 것이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김 사장 발언의 실현 여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대북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의도적인 ‘물타기’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자세로 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사업이 앞으로 온전하게 굴러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대 측의 주장처럼 자신들이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국민들 앞에 나서서 전후 사정을 밝히면 된다. 얼굴을 내비치지도 못하면서 뒷전에서만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는 식의 상투적인 변명만 늘어놓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대 측은 당장의 곤경을 면하기 위해 진실을 호도하려는 헛된 시도에 매달릴 수록 국민들은 점점 더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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