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20일 개막된다. 회원국들은 정상회의에서 채택할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 선언’ 문안을 19일 고위관리 회의(SOM)에서 확정했다. 정부가 3월쯤 처음 구상한 후 6개월여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그러나 최종 문안을 확정하기까지 진통이 있었다. 19일 고위관리 회의는 이 문제를 놓고 2시간30분 정도 토론을 벌였다.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평화정착 분위기를 지지한다는 데는 아무 이견이 없었으나 ‘북한’ 문제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 한반도 평화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지역 안정을 위해 호응해야 한다는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등을 의식, 북한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더라도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북한의 노력을 평가하는 대신 관련 당사국의 ‘의무’도 명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등 일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19일 고위관리회의를 주재한 최영진(최영진) 외교부 외교정책실장은 “여러 방법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포괄적인 표현을 쓰기로 합의했다”고 말해 WMD 문제는 포함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이날 서울선언의 문안이 확정되자 즉시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측에 전달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서울선언 채택은 선언이 의미하는 그대로 한반도의 평화를 국제사회에 선포하는 상징적 절차가 될 전망이다. 포괄적이나마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북한이 한반도를 과거와 같은 긴장 국면으로 몰고가지 못하도록 하는 ‘제어장치’를 하나 더 마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문안 내용에서도 북한을 자극할 만한 표현이 빠짐으로써 북한을 ASEM에 끌어들일 수 있는 터전도 닦았다.

그러나 당분간 북한을 ASEM에 가입시키거나 ASEM의 개별 사업에 참여시키는 문제는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ASEM이 비회원국의 참여를 회원국 전원 합의로만 허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선언 합의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평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서울선언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보여준 긍정적 변화를 평가해주면서도 앞으로 더욱 잘 하라는 요구도 부과한 셈이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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