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밀핵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지금 김대중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남은 임기동안 국민이 현정부를 최소한이나마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대북 핵포기 압박을 높이고 있는 미국 주도의 국제공조와 기왕의 대북사업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대북 핵 국제공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김 대통령 스스로가 이제 남북관계에서 역사적 업적을 남기겠다는 집착과 망상(妄想)을 포기하고, 당장 현실로 닥친 북한 핵문제가 한반도 안보위기로 번지기 전에 해결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이미 미국 정부는 북한과 맺은 94년 제네바 핵 합의 파기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면서, 한국과 일본·중국·러시아·유럽 등 관련국들에게 대북 경제·외교관계나 지원을 ‘핵 포기 압박 노력’과 연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최대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한국정부는 북한 핵문제와는 별개로 기존의 대북 경의선 물자 제공이나 비료지원 등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비밀 핵프로그램이 공개됨으로써 현정권의 대북정책은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그 뿌리부터 위협하는 북한 핵문제가 등장한 이상 다른 분야의 남북관계라는 것도 당분간 별 의미가 없어진 상태다. 그런데도 기존의 대북사업에 집착하는 현정부의 태도는 대체 무엇인가? 대북지원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무슨 사연이라도 정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적 우려나 분노, 국제공조 등은 아랑곳하지않는 현정부의 아집 때문인지 답답할 뿐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려면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공조와, 이를 통한 대북압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국제공조를 주도해야 할 한국정부가 ‘딴전’을 부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 핵문제는 바로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 걸린 중대사안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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