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밝혀진 북한의 비밀 핵개발은 그동안의 북한 핵개발과 심각성의 정도가 다르다. 90년대 초 핵개발은 명목상으로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었다. 따라서 ‘핵의 평화적 이용이냐’ ‘핵무기 제조용이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98년에 불거진 북한 금창리 지하시설도 ‘핵시설 의혹’이 제기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북한이 핵무기 제조 목적으로 파키스탄에서 우라늄 농축장비를 구입해, 이미 농축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또 이번 핵개발은 북한이 문서로 “앞으로 핵개발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제네바 핵합의(94년)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내걸고 있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때문…’ 등은 이유가 되질 않는다. 더욱이 북한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너무나 당당하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 정부의 첫 반응은 “어떤 핵개발도 반대하나,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한 손으로 우리의 비료와 식량을 받으면서 다른 손으로 수많은 동족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핵무기를 비밀리에 만들고 있다는 데 대한 ‘분노’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정부의 당국자들은 “북한이 전에 없이 시인했다”, “북한도 대화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등 북한의 입장을 감싸는 듯한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관계 일정도 핵개발 발표 전이나 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정부 내에서 “장관급회담을 예정대로 열어도 되는 것이냐”는 신중한 목소리는 아예 묻혀 버렸다. 19일에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북측지역 공사에 투입될 장비·자재도 북으로 보낸다.

북이 아무리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화 한번 내지 않는 정부, 국민의 안위와 직결된 사안까지도 대화타령만 하는 정부를 두둔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김인구 ·정치부기자 ginko@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