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고 스스로 실토한 데 대한 현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부가 과연 일관되고도 결연한 원칙을 갖추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 그저 ‘핵 개발 불용(不容)’과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미·일 공조 강화’라는 수사(修辭)만 들려올 뿐이다.

현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최소한 보름 전, 켈리 미특사의 방북 전에 미국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공개된 지금에는 당연히 정부의 준비된 상황인식과 대응책이 제시돼야 할 것인데도, 국민들은 외교부 차관보의 실무적 설명 외에는 달리 속시원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자체를 강력히 규탄하기보다는 북한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더 신경을 쓰면서 애써 사태를 낙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점이다. 정부 고위당국자의 입에서 “북측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고 평가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을 때인 지난 9일에도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를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당하면서도 아직도 북한정권의 ‘선의(善意)’를 믿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 사태로 현 정부의 ‘햇볕’이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음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문제해법을 햇볕식 접근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미국과의 흥정거리로 삼거나, 나아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한반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현 정부가 과연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할 단호하고 투철한 의지가 있는지 여부는 우선 19일 열리는 남북장관급회담에 임하는 자세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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