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祐英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

북한에서 살아남은 5명의 일본 납북자들이 고국을 방문했다. 김일성 배지를 달고 나타난 이들이 북한에 남은 가족들 생각에 제대로 감회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숨겨진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다른 납북자 8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북한 발표와 마찬가지로, 이들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 참담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한국 납북자가족들을 대표해 바쁘게 달려온 필자로서는 이들 일본 납북자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들은 조국의 국민들과 고이즈미 총리의 노력으로 ‘납북자’라는 신분(?)을 되찾고, 이 이름으로 자신들이 겪은 끔찍한 일들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납북자가족들은 지난 몇 년간 “우리도 햇볕정책의 수혜자가 되고 싶다”고 목청껏 외쳐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에 가면서 북한에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들을 데려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했다. 2000년 9월 이른바 ‘비전향장기수들’이 축포 속에 북한으로 돌아갈 때는 필자도 가족들을 대표해 꽃다발을 건네며 그들을 따뜻하게 배웅했다. 그들이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가족들도 같은 이름으로 돌아오겠거니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 후 동진호 납북어부 강희근씨 어머니가 이산가족상봉단에 끼여 북한에서 아들과 만났다. 다음에는 1969년 대한항공기 피랍으로 북한에 억류된 성경희씨 어머니가 딸을, 그리고 얼마 전 금강산에서는 68년 창영호 납북어부 정장백씨와 그의 어머니가 만났다.

이게 전부다. 이산가족상봉단에 끼여 납북자가족이라는 사실을 쉬쉬하면서 세 명의 어머니가 자식 얼굴 한 번 슬쩍 본 것이 전부다. 이걸 대단한 성과라고 말한다면 다른 가족들에 대한 명백한 모독일 뿐이다.

우리 정부는 ‘납북자’라는 말이 껄끄러우니 이 문제는 이산가족 문제에 포함시켜서 해결한다는 입장만 반복해 왔다. 납북자문제가 남북화해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요청까지 해 왔다. 우리 정부는 통일부 이산가족1과에 이 문제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도록 해 놓은 채 납북자문제는 없다는 듯 지금도 팔짱만 끼고 있다.

납북어부 이재근 진정팔씨 등이 북한에서 탈출해 제3국에서 우리 정부에 구조를 요청할 때도 “대한민국에 세금 낸 적 있느냐”고 묻는 것이 우리 외교공무원의 태도였다. 어떤 북한전문가라는 학자는 신문에 “납북자문제만 있나, 납남자문제도 있다”고 버젓이 쓰기도 했다.

이제 필자는 진짜 반성문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87년 납북된 동진호의 어로장이셨던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숨죽이고 있던 다른 납북자 가족들을 찾아내 모임을 만들어 힘을 모은 결과가 ‘납북자문제는 없다’는 남북한 당국의 공통된 ‘결론’으로 돌아왔다면 애초에 활동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 아닐까. 자괴심을 떨칠 수 없다.

제발 우리 정부가 납북자문제는 납북자문제로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납치는 테러이자 명백한 범죄행위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면서 한국인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는커녕 문제 자체도 시인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우리 정부의 무능 말고는 달리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에 중학생 딸을 잃어버리고 25년을 눈물로 살아온 요코다 메구미씨의 부모님이 있다면, 한국에는 고등학생 아들을 잃어버리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최승민 이민교씨 부모님들이 있다. 살아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죽었다면 제삿날이라도 알고 싶어하는 납북자가족들이 숱하다.

필자가 도쿄에서 하스이케씨 어머니를 만났을 때 스무 살 대학생 아들을 니가타 해안에서 잃어버린 후 너무나 울어서 ‘귀신’ 같은 얼굴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런 분이 이제는 살아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 납북자가족들도 이런 순간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잃어버린 납북자문제를 다시 찾아내 해결해 줄 리더십은 정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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