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질 대로 망가져 시중의 만담(漫談)거리로 전락해버린 군(軍)의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대한민국 국군이 창군(創軍) 이래 이토록 지리멸렬해버린 적이 또 있었던가.

5679부대장 한철용 소장의 폭로로 발화된 「6·29 서해도발 정보보고 묵살」 파문은 국방부 특별조사단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뒤죽박죽이 돼가고 있다. 북한군 동향 보고를 국방장관이 삭제·묵살했다고 주장했던 당사자가 그 자신도 도발징후 정보를 누락시킨 「이상 무(無)」 보고서를 두 번씩이나 올린 사실이 드러나, 그 이유와 경위 여하 간에 이쪽저쪽 모두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정복차림의 장성(將星)이 정치인들 앞에서 군사기밀 문서를 흔들며 『이런 지휘부 밑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옷을 벗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때 우리 군은 이미 위엄과 위계질서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이 엎치락뒤치락으로 그나마 남은 최소한의 위신마저 잃게 됐다. 그렇다고 한 소장이 최초에 제기한 보고묵살 의혹이 해소된 것도 아니니, 군이 이 수렁을 어떻게 헤쳐나올지 옆에서 보는 사람도 난감하다.

그런가 하면 한 소장이 이끌던 감청부대와 작전상 협조관계에 있는 정보사령부는 지난 4월부터 무려 40여일간이나 서로 정보공유를 중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다름아닌 두 정보기관 실무자 사이의 사소한 감정싸움이었다니, 이쯤 되면 우리 군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갈 데까지 가버렸다는 이야기인가.

이 참담한 사태는 근본적으로 군의 일부 상층부가 국방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정치의 입김을 개입시키고, 때로 권력의 흐름에 편승하려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해에서 벌어진 여러 굴욕적인 사건들도 적(敵)과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군인이 정치수단인 「햇볕」을 무슨 교전규칙인 양 혼동한 데서 빚어진 것이다.

현 정권 들어 군은 국민 신뢰 상실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군은 심기일전해야 한다. 정권도 군을 더 이상 흔들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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