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조명록(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은 결국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라는 합의까지 낳았다. 미·북 관계의 이같은 급속한 발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앞으로 이것이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일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관해, 김경원(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과 안병준(안병준) 연세대 교수의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

▲김경원 원장=북한 조명록(조명록) 차수의 방미는 무대 연출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시기적으로 노동당 창건 55주년에 맞춰 이뤄졌고, 백악관에 훈장 달린 군복을 입고 들어간 것도 눈길을 끌었다. 방미 전체가 세밀하게 계획됐고, 북한의 연출자(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가 단단히 각오를 했기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까지 이끌어냈다. 앞으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지를 엿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안병준 교수=한마디로 미·북 공동성명은 미국의 페리보고서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 화답이다. 조 차수가 클린턴 대통령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만난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미국 정부와 직접 협상하겠다던 북한의 입장이 실현된 것으로, 특히 군복을 입은 북한 최고 당국자 중 한 사람이 미국의 최고당국자와 대좌한 것은 파격이다. 내용면에서도 미·북 관계가 대결에서 화해·협력 및 국교정상화 방향으로 가는 과정을 출범시켜 예기치 않은 큰 변화를 보였다.

▲김=조 차수 방미가 극적으로 이뤄지고 부각된 것은 미국의 대선, 클린턴이 심혈을 기울였던 중동사태 악화 등이 한몫을 했다고 본다. 그리고 미국이 클린턴 대통령의 방미까지 합의한 것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안=북한은 클린턴 임기 내에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내고, 미·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클린턴도 집권을 끝내기 전에 대북 관계개선을 긍정적 업적으로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평화의 사절로 북한방문을 결정한 것이다.

▲김=북한은 김일성(김일성) 주석 때부터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해 여러차례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국을 제쳐놓으려고 해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3월 남북정상회담에 응하기로 함으로써 이미 워싱턴행 표를 손에 쥐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이 워싱턴으로 가는 데 걸어두었던 빗장을 풀어줬다. 이제 북한은 한국 정부의 축복을 받으며 미국에 접근하고 있다.

앞으로 평화협정 문제가 복잡한데, 이번 공동성명에서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이란 표현대신 ‘평화보장체계’라는 표현을 쓰고, “4자회담 등 여러 방도들이 있다”고 한 것은 한국의 입장을 의식한 것으로 본다. 만약 북한이 한국을 제쳐놓고 미·북 간에 평화조약을 체결하려 할 경우에는 남북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안=‘평화보장체계’와 ‘4자회담’ 등의 표현은 그동안 미·북간의 평화협정만 주장해오던 북한이 4자회담을 통한 평화협정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우리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북·미 관계 개선에 한국의 역할이 컸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언급도 없고, 미국이 남북대화를 계속 지지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편 ‘테러 지원국’ 해제 문제는 북한이 행동으로 실천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공동성명에서 시사했다. 앞으로는 미·북간의 대결관계를 지양하는 접촉과 협상이 있을 것이고,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실무협의가 논의될 것이다. 핵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기본합의서 이행을 약속했고,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미사일 협상 동안 발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으므로 미·북간에 본격적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북한이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테러 지원국’ 해제다. 그렇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미사일 개발 저지가 가장 중요하다. 의회를 지배하는 공화당 쪽에서는 북한이 대가를 전제로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번 조 차수 만찬에 공화당 의원들이 불참한 것만 봐도 미·북관계가 쉽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안=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미국 입장에서는 국교정상화나 북한 지원이 곤란하다. 미국 의회와 언론은 미사일 수출을 막는 것을 중시하면서 북한의 실태에 대해 알아보자는 분위기다. 반면 행정부는 테러 지원국에서 북한을 제외시켜 IMF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통해 북한이 미사일을 수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다.

▲김=향후 미·북 관계 개선 과정에 변수가 있다면 역시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다. 공화당은 국가미사일방어망(NMD)을 당연히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북한에 혜택을 주면서까지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정책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민주당의 고어 후보가 당선된다면 큰 변화는 없겠지만, 공화당 부시 후보는, “국가이익 보호를 위해서는 힘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국가에 대해 보상을 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이다. 부시가 당선된다면, 북한이 건설적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상당히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김=미·북 관계의 급진전으로 일본 정부의 입장이 좀 곤란하게 됐다. 과거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 등 때문에 국내여론이 북한에 비판적이어서, 조심스럽게 계산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서울과 워싱턴에서 대북 관계가 급류를 타버렸다. 일본은 대북 관계에서 너무 뒤처지지 않고, 미·북 관계와 비슷하게 가기를 바라고 있다.

▲안=미·북 관계에서 테러 및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이 진전된 입장을 보인다면 일·북 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도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식량문제 해결에 가장 많이 기여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김=이번 조 차수의 방미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어제의 최대 우방과 어제의 우리 적(적)이 서로 웃고 악수하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당당한 군복 차림으로 백악관에 들어가는 그를 보고 ‘민족적 긍지’를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자세를 잘 정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남북 공존·경쟁 체제에서 이념적 경쟁에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조 차수는 군복을 입고 백악관에 갔지만, 그것은 형식이고, 좀더 차분하게 생각한다면 내용에 있어서는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거의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조 차수의 방미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등 일련의 미·북 관계의 급진전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명확한 설명을 해야한다. 미·북관계의 진전이 우리의 국가이익을 손상하지 않고,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목적, 즉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지역의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남북한간의 화해와 협력 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말해야 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미·북 관계 진전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를 정착하는 데 기여하는가 하는 것이다.

▲김=미·북 관계가 개선되고 정상화될 때 제기되는 문제는 주한미군의 역할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대로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그 역할이 필요하다. 미·북 관계개선의 급류 속에서 미군 문제가 통제불능 상태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금부터 면밀히 대처해야 한다. 미·북 관계 개선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도 부인해서는 안된다. 또 미·북관계가 급하게 돌아가면 동북아 질서 전체가 재편되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질 수 있다. 대전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안=앞으로 우리 역할은 한·미동맹의 관리다. 남북간에는 재래식 무기 감축이, 미·북간에는 미사일 문제가 여전히 남았으니까 한·미간 공조가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한반도 평화유지와 비핵화 실현을 위해 한·미동맹을 중장기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또 미국 의회와 미국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작업을 계속해야 하고, 국내에서도 이런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미군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접근한다면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한 것 같은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왜 한미동맹이 바람직한지 국민들에게 얘기해야 한다.

/정리=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