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관계가 급류를 탔다. 반세기에 걸친 적대(적대) 관계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기세다.

가장 놀라운 것은 어떤 형식의 외교관계도 없는 미·북이 ‘정상 방문’으로까지 단숨에 도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북은 12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 합중국 대통령의 (가능성 있는) 방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가까운 시일 안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하였다”라고 선언했다.

세계 초강국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그 상징적 의미가 엄청나다. 북한을 국제무대에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사실상 ‘승인’하는 것은 물론, 미·북 관계가 단숨에 수교(수교)로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한승주(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실현된다면, 미·북 관계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공동성명에는 ‘미 합중국 대통령’이라고 표현했지만 올브라이트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대통령’이라고 못박았고, 클린턴의 방북 시기에 대해서는 올브라이트의 ‘이달 중 방북 후 곧’이라고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이 언급, 미·북 관계개선의 속도를 느끼게 했다.

이에 따라 클린턴은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베트남 방문을 전후해 방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의 회견 전까지는, 미국이 발표한 성명문에 ‘가능성있는 방문(possible visit)’이라고 돼 있어, 향후 상황에 따라 클린턴의 방북이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었다.

공동성명은 “두 나라 사이의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근본적 관계 개선 조치는 ‘수교’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들이다. 1970년대의 미·중 관계가 좋은 참고가 된다. 당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사전 정지 작업을 거쳐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전격 중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정작 외교공관 개설 등 수교가 이뤄진 것은 한참 뒤인 1979년초의 일이다.

당시 미·중 수교의 최대 장애물은 ‘대만(대만) 문제’였다. 특히 미국내 보수 진영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결국 ‘대만관계법’ 등 안전 장치를 만든 후 민주당 출신인 지미 카터 대통령이 미 의회의 중간 선거가 끝난 후 전격 수교 조치를 단행했던 것이다.

현재 미·북간에는 ‘대만 변수’가 없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미·북관계 진전의 가속(가속)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백진현(백진현) 서울대 교수는 “중국처럼 오래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 북한과의 합의는 원칙과 총론을 결정지어 놓고, ‘각론(각론)’에서의 의견 차이로 시간을 허비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북 양측이 서로 넘어야 할 제도적·법적·내부적 장애가 적지 않다. 미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의 견제를 넘어야 하고, 그나마 클린턴 정부의 임기는 석달 조금 넘게 남은 상태다.

북한 역시 정권 차원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미 대통령 방문’이라는 상징의 무게에 걸맞은 ‘개혁과 개방’ 조치 없이, 미·북 관계를 진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미·북 합의나, 미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의 상호 방문이 ‘상징 연출’ 차원에 그칠 수 있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조명록(조명록) 특사가 11일 만찬사 발언대로 “김 위원장이 조·미 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수사(수사)만이 아니라면, 미·북 관계는 한반도 상황에 적잖은 격랑을 가져올 전망이다.

/박두식 기자 dspark@chosun.com

/워싱턴=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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