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29 서해도발 직전 대북 통신감청 부대가 북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는데도 당시 국방장관이 도발 위험이 없는 것처럼 재작성하라고 지시했다는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의 주장은 국감장에서 한번 호통치는 정도로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다. 군 당국은 즉각 관련자들을 수사해서 진상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월드컵 막바지에 터진 북한의 서해도발은 한국축구의 4강진출로 달아오른 거국적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북의 태도변화를 기대해온 국민들에게 결정적 배신감을 안긴 폭거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은 한심하리만큼 무기력했다. 얼마 후에는 당시 군 수뇌부가 북한 도발에 관한 사전정보가 공개될 경우 월드컵과 남북화해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선 정보보고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흐지부지 지나가버렸다.

박 의원의 이번 주장은 그 의혹을 구체화한 것으로,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차라리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증인으로 나온 통신감청부대장은 일일 정보보고서인 ‘블랙 북’까지 내보이면서 박 의원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이쯤 되면 당시 국방장관이나 지금의 지휘부는 마냥 부인만 할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진위를 가려야 한다. 현행 수사체제로 어려우면 특별조사팀 구성 같은 특단의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방장관이 직접 보고서 재작성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 그 이하 보고체계 선상에서 정보의 왜곡이나 축소가 빚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진상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가안보 수호라는 군의 존립이유를 정치논리로 훼손하는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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