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뒷거래’ 의혹에서 비롯된 오늘의 국정 마비와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진상 규명을 이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일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현 정권 고위 인사들이 공직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포기한 채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번 의혹을 푸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금감원의 계좌추적을 거부하고 있는 이근영 금감원장은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문제의 4900억원을 대출키로 결정할 때 이 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이씨를 그냥 두고 계좌추적을 하라는 것은 자기 뒤를 자기 보고 캐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 정부 대북정책 설계자의 한 사람이라는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현 청와대특보)이나, 대북 밀사로 나섰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현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핵심 당사자들도 무책임하기는 매 일반이다. 이들은 “우리는 모르는 일” “산업은행과 현대상선이 밝힐 문제”라며 몸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대상선이 내놓은 해명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초 대출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돈을 회계장부에 기록조차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이제는 아예 입까지 다물어 버렸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정부가 진상 규명을 거부하는 것은 직무유기의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중대한 위법행위다.

더욱이 현 집권세력은 이 사건을 정쟁(政爭)으로 몰고가면서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거꾸로 남북 뒷거래 의혹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냉전 세력의 음모’라고 뒤집어 씌우려고까지 하고 있다. 이같은 부도덕한 책략이 불러올 사태는 국민적 저항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는 회계감리와 계좌추적만으로 쉽게 진상 규명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 쉽고 분명한 길을 외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그렇게 두렵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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