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베이징(북경)을 거쳐 8일 샌프란시스코에 첫발을 내디딘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감색 정장 차림이었다. 조명록 일행은 국방장관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일하면서 북한의 생존전략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던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의 안내를 받았다. 공항에 도착한 조명록은 50여명에 달하는 한국 및 외국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일절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미 국무부가 제공한 검은 색 리무진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페리 조정관은 이날 낮 자신이 이사로 일한 적이 있는 루슨트 테크놀러지의 실리콘 밸리 공장으로 조 부위원장 일행을 안내했고, 자신의 교수연구실 아래층 회의실에 연회장을 마련, 40여명의 양측 인사를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조 부위원장과 지난 93년 이후 대북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보도진을 마주칠 때마다 환한 웃음을 보여 페리 조정관을 중개인으로 한 미국측과의 대화가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페리 전 조정관이 주최한 저녁 모임에는 조 부위원장 등 북한측에서 15명, 미국측에서 12명 등 모두 27명이 참석했다.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만찬에는 미국측에서 페리 전 조정관 부부, 헤리 로웬 스탠퍼드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부부 등 주로 이 대학 관계자들이, 한국계로는 이종문 앰벡스 회장, 김종훈 루슨트테크놀러지 사장이 참석했다.

만찬은 페리 전 조정관의 환영사, 조 부위원장의 답사, 식사 순으로 이어졌다. 메뉴로는 미국식 정식이 풀코스로 제공됐고, 북한측 인사들을 위해 김치와 한국 소주가 나왔다고 참석자들은 말했다. 조 부위원장은 공군출신으로 미사일과 핵 등 분야의 현안들에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 나온 미 국무부 관계자는 “오늘 일정은 모두 페리 전 국방부장관의 개인행사”라고 강조했으나, 조 부위원장 일행의 의전과 경호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미국측은 조 부위원장의 공항 도착 시간외의 모든 행사일정을 비밀에 붙였다. /샌프란시스코=김연광기자 yeonk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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