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재(이안재·60)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장의 승용차 안에는 큼지막한 ‘교육현황 소개’ 차트와 연수원 안내 책자가 실려있다. 그는 이 자료를 갖고 정부부처, 기업, 사회단체, 정당 가릴 것 없이 돌아다니며 설명에 열을 올린다. 연수원에 손님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과 달리 그는 편하지 못하다. 새마을을 둘러싼 여건이 그만큼 변했다.

“이제 과거 불길처럼 번졌던 새마을 운동의 향수(향수)만으로는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발로 뛰는 수 밖에는 없어요. ” 그는 성남시 분당구 율동 연수원에서 10개월 정도는 직원과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과거엔 ‘관변단체’로 새마을 지도자 교육이나 정부의 지원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홀로서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당시 수원에 있던 새마을지도자 연수원 교수를 시작으로 새마을 운동에 몸을 담은 이 원장은 연수원과 새마을 교육의 산 증인이나 마찬가지다.

95년에는 한국인력개발원 원장으로 잠깐 바깥 바람을 쐬었지만 지난해부터 연수원장을 맡았다. 정부의 지원이 끊기고 독립채산제로 바뀌면서 연수원을 ‘자립’시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임무가 됐다.

이 원장은 스스로를 관리자가 아니라 세일즈맨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고객이 될만한 곳을 돌아 다니는 것이 주요 일과이다. 그 결과 올해만도 성균관 유림, 재향군인회, 삼성전자 등 다양한 고객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유치했다. 그는 “과거 새마을운동 당시에는 가슴만 뜨겁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꾸준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마을연수원은 최근 서바이벌(Survival) 훈련장을 개장했다. 직원들이 직접 산비탈의 풀을 뽑고 시설을 꾸몄다. 강당에 많은 사람을 모아두고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요즘은 정적인 교육보다는 동적인 교육을 선호한다”며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도전과 생존이라는 주제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웬 새마을이냐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해야 한다’는 사명, ‘하면 된다’는 신념, ‘할수 있다’는 의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 특히 외국인 교육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그동안 100여개국, 1만여명이 이곳에서 새마을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현재 각국에서 정부의 정책을 움직이는 자리에 있어 더욱 보람을 느낀다.

이 원장은 또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새마을을 매개로 한 북한과의 교류도 기대하고 있다. 그는 “현재 북한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던 우리의 70년대와 사정이 비슷하다고 본다”며 “우리의 새마을 지도자들이 북한에서 지역개발 운동을 펼치고, 연수원이 북한 관계자들을 초청해 교육하는 날도 오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상은기자 se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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