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9일 청와대회담은 오전 11시부터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주로 이 총재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직설적으로 의견을 밝히고 김 대통령도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며 대답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다음은 두 사람의 분야별 대화록 요지.

◆남북문제

▲이 총재=남북문제를 서두르는 것 아닌가.

▲김 대통령=55년 만에 처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손대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진행되는 것도 있지만 서두를 생각은 없다.

▲이 총재=남북국방장관 회담이 경의선 복원만 논의하고 포괄적 긴장완화에 대해서는 별 성과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

▲김 대통령=2차 회담에서 긴장완화에 대한 진전이 더 있을 것이다.

▲이 총재=무리한 대북투자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면 안 된다. 현대그룹 위기는 수익성 없는 대북투자가 가장 큰 이유이며 한국경제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대통령=민간차원과는 별개로 정부에서 하는 것도 2~3년에 거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도하지 않다. 내년 예산에 계상한 5000억원 범위 내에서 하겠다. YS 때 식량지원으로 2억달러 이상을 했지만 금년에는 그것보다 적지 않느냐.

▲이 총재=비전향 장기수는 돌려보내면서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강하게 요구 못하고 있다. 국정원장이 ‘정전협정으로 국군포로 문제는 끝났다’고 말한 것은 문제 아닌가.

▲김 대통령=그 문제는 법 이론적으로 따지면 복잡하고 시끄러워진다. 인도적으로 해결해서 가족끼리 소식을 알고, 궁극적으로 상봉하고 재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총재=그렇게 하면 해결이 안된다.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 대북지원이나 협상의 과정이 투명하지도 않고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할 일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식량지원도 다 끝내고 나서 야당에 알려주고, 그러고 협조해 달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식량이 북한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한다.

▲김 대통령=사전에 논의하고 식량지원을 결정하면 곡가가 올라갈 우려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총재=미·북관계 개선은?

▲김 대통령=미·북관계와 일·북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 평화정착과 경제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차관도 가능해지고 국제사회의 투자도 많아진다. 그러면 우리의 부담도 작아질 것이다.

◆통일방안

▲이 총재=아무리 통일이 중요해도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을 원한다. 북한의 연방제는 대남 적화전략의 핵심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필경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연합이니 연방이니 하는 문제는 대한민국 국체와 관련된 문제로 국민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어떤 수식어를 붙이든,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거나 타협하는 계기를 만드는 일은 우리 야당이 결코 용납지 않을 것이다.

▲김 대통령=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에 대해 북한이 한 얘기는 남북연합제와 대단히 유사하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낮은 단계건, 높은 단계건 연방제를 합의하면 나는 서울에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남북연합제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미군철수 주장을 철회하고, 국가보안법은 남쪽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큰 성과이다. 요즘 북한이 미군철수를 주장 하는 것은 북한 국내용이다. 연방제는 외교군사권은 중앙정부에 일임하는 것인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연방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본다. 이 문제는 당장 우리에게 닥친 것이 아니고 앞으로의 진전상황을 야당과 협의해서 하도록 하겠다. 어쩌면 국민투표도 거쳐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이다.

◆국내정치

▲김 대통령=지난 4월 이 총재가 제안했던 여야 정책협의회를 빨리 가동하자. 남북문제는 이 총재가 제의한 남북문제특위를 살려서 여야간에 충분히 협의하자. 영수회담을 2개월에 한번씩 정례화하자.

▲이 총재=모두 찬성한다.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버리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국정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대통령 당선 후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나.

▲김 대통령=무슨 말인지 알겠다. 참고로 하겠다.

▲이 총재=자민련 문제는 총선 민의가 그렇게 됐는데, 민주당이 자민련과 합세를 했기 때문에 원외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법 날치기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재발돼 선 안된다.

▲김 대통령=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과반수 못된 것도 사실 아니냐. 현실적으로 영향력있는 자민련을 무시해서는 안되기에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표결됐으면 한다.

◆정치 현안

▲이 총재=국민 80%가 한빛은행 대출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못 믿는다. 일단 국정조사를 실시하지만 미흡할 경우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김 대통령=검찰이 수사 중이므로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할 문제다. 검찰이 수사 중인데, 너무 정치적으로 ‘해임하라’ ‘구속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박지원(박지원) 전 장관에 대해 한나라당이 너무 가혹했다. 상당히 억울하게 사퇴한 것 같다. 검찰이 수사중이라 무어라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이 총재=결국은 특검제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선거사범 편파수사가 극심하다. 10월 13일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명백한 여당측 혐의에 대해서도 대부분 불기소하고 있다. 지난 영수회담 때 한 ‘엄정·공정한 처리’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 결단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 대통령=내가 들어보면 야당은 야당대로 불공정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손해본다고 주장하더라. 나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야가 다같이 검찰이 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좋다. ▶4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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