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6월 김일성 당시 주석은 철도부장(장관)에게 평의선(평양과 신의주간)을 복선화할 것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김일성 주석은 “남조선과 다른 나라의 화물열차가 우리나라를 통과하도록 하고 통과비만 받아도 나라 살림의 허리가 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시에 따라 평의선 상당부분의 선로가 교체되고, 침목도 나무에서 콘크리트로 바뀌었다. 일부 노선은 복선화도 이루어졌다. 정상회담이 열리면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을 제의할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 철도 종사자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김 주석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고 그와 함께 철도 개선 작업도 중단됐다.

그로부터 6년 후, 남북한 철도를 잇는 작업이 시작됐다. 김일성은 “철도는 인민경제의 동맥”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 북한에서 철도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철도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대부분 전철화돼 있지만 전력이 부족해 시도 때도 없이 멈춰 선다. 선로와 침목은 낡을 대로 낡았고, 기관차도 제대로 된 게 드물다.

서울~인천간 거리 정도인 평양~남포간이 열흘 걸릴 때도 있다. 정상적으로 달린다면 23시간 거리인 평양~온성간은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열차시간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기차는 항상 만원이다. 부족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방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각 기차역은 주민 수에 따라 기차표가 배정돼 나온다. 사람은 넘쳐나는데 좌석이 없으니 표는 의미가 없다. 단단히 마음먹고 무조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기차 지붕 위에까지 사람들이 올라타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최대급행(간부용 열차), 1열차(평양~두만강) 같은 경우 말고는 온전한 창문을 구경하기 힘들다. 깨진 창문은 사람들의 통로이다.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선 자리서 용변 보는 것도 다반사이다.

비상식량은 승객들에게 필수품이다. 한번 멈춘 열차는 언제 다시 움직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급한 화물 수송건이 생기면 달리는 여객열차를 세우고, 기관차를 떼내 간다. 급히 다른 곳에 전기를 공급할 일이 생겨도 기차는 멈춰 선다. 그곳이 역일 수도 있고, 허허벌판이나 산중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을 당한 승객들은 며칠이고 꼼짝없이 기차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비상식량으로는 옥수수를 튀겨서 가루로 만든 ‘속도전 가루’가 일반적이다. 들판에 채소라도 자라고 있으면 요기거리가 되지만 한겨울에는 얼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생긴다.

식량난이 시작되기 전인 10여년 전만 해도 열차는 북한 주민들에게 추억을 만드는 곳이었다. 기차에 오르면 옆사람과 인사부터 나누고 주패(트럼프)가 돌아간다. 술과 안주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민다. 남한에 와서 기차를 타보니 시설은 최고지만 사람의 냄새가 없다.

남북한 철도 연결이 북한 철도 개선의 촉진제가 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철도는 북한 주민들의 생명선이고 그 생명선이 지금 서서히 멈추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광일(30·평양철도대학 졸업·1999년 한국 입국)

/박종수(30·함경북도에서 역무원 근무ㆍ1999년 한국 입국)

북한 철도 개황

총연장 : 5.214km(1997년) 남한은 6.508km

전철화율 : 78.8%

수송분담율 : 화물 90%, 여객62%

철도차량 : 기관차 1.162대, 객차 1.048대, 화차 21.130대

주요구간 : 평부선(평양~개성) 186.5km , 평의선(평양~신의주) 223.6km , 평라선(평양~나진) 785.6km , 만포선(순천~만포) 299.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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