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영화작업을 하면서 나 역시 문화적 이질감을 느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영화의 표현이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남한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북한에서는 금기로 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북한영화에는 키스장면도 없었고, 삼각관계도 금기로 되어 있어 다룰 수 없었다.

미인관(미인관)의 차이로 내가 겪은 갈등도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을 감독하면서 나는 춘향역의 주연배우로 평양 순안비행장의 귀빈실 접대원(스튜어디스 견습생)을 발탁했다. 동구 여행을 떠나기 위해 평양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우리의 출국을 구경 나온 이 접대원이 눈에 띄어 춘향이로 발탁한 것이다. 잘 키우면 좋은 배우가 될 것으로 보였다.

장선희라는 이름의 이 아가씨는 나이가 21세 가량으로 평양 출신이며, 160cm 전후의 호리호리한 키에 얼굴은 계란형의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장선희를 춘향역으로 뽑자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의 이유는 춘향이 될 수 있는 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토실토실 살이 찐 부잣집 맏며느리감 같은 복스러운 여성을 미인으로 치는데, 우리가 춘향으로 뽑은 아가씨는 몸이 가냘프고 날씬해서 도저히 미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꽤 반발이 있었으나, 내 뜻대로 밀고 나갔다. 후에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김정일이 나에게 “수령님도 춘향이가 그 정도면 괜찮다고 말했다” 고 슬쩍 귀띔해 주었다. 그도 이 일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끓였던 모양이었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나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와 북한 사람들의 미인관이 다르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영화는 많은 관객에게 영향을 미치며, 한 시대의 새로운 미인을 탄생시키기도 하는 창조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소한 이질감이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메일 클럽(www.emailclub.net) NK리포트에서는 신상옥 감독이 이번 연재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약력 ▲1926년 함북 청진 출생 ▲1944년 동경미술전문학교졸업 ▲1951년 이후 90여편의 영화 감독 및 제작 ▲1978년 북한에 피랍 ▲1986년 오스트리아에서 탈출, 현재 미국 거주.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