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북한인권시민연합 기획이사·법학박사·전 이화여대 교수

중국 정부와 북한 당국의 강화된 통제에도 불구하고 탈북 동포들의 자유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외국 대사관에서 한국대사관으로, 외국공관 부설 학교에서 아예 중국 외교부로, 탈출로를 잃은 이들의 질주는 극한을 치닫고 있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외부인들의 관심은 이제 일본·미국·프랑스 등 서유럽을 넘어서서 과거 북한의 공산주의 형제 국가들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북한 인권 옹호를 위해 국제 캠페인을 벌여온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최근 체코의 저명한 인권 옹호 및 인도지원 단체인 ‘피플 인 니드’재단의 초청으로 체코를 방문해 하벨 대통령과 상·하원의장을 포함한 의회 및 정부 인사들을 만나 북한 인권에 관해 폭넓은 의견 교환의 기회를 가졌다. 동유럽 인권단체들도 만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하벨 대통령은 북한 내 강제수용소와 재중 탈북자들의 실태에 관해 30여분간 진지하게 청취한 뒤 북한 내 민주적 시민들의 결집체가 있는지 먼저 물었다. 의외의 질문에 다소 궁색하게 50년간의 전체주의적 지배 속에서 일반주민들은 결집을 이룰 만한 힘을 갖지 못하고 있고, 정치적 인사들 역시 조직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성 답변을 내놓았다.

하벨 대통령의 질문은 거꾸로 우리들에게 반문하도록 하는 기회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인권단체들의 그간의 요구는 무리한 것도, 그렇다고 강력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과 북한당국이 자신들도 가입하고 있는 국제인권법의 기준에 맞춰 탈북자들을 대우할 것, 생명의 위협에 처하게 되는 이들을 강제 송환하지 말 것, 송환돼도 수용소에 수감하지 말 것, 수감돼도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가하지 말 것, 생명의 안전을 위협하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결국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들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존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내년 3월 프라하에서 열리는 제4차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 NGO(비정부기구)회의 준비 모임에 참석한 동유럽 인권단체들의 질문도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남북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이 왜 조기에 이뤄지지 않는가? 북한 주민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단순한 요구나 캠페인 이외에 좀더 효과적인 해결 방안들을 왜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는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왜 공개적으로 동시에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인가?

결국 모든 질문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던져지는 것들이었다. 그간 추진돼온 대북정책들의 목표와 방향은 무엇이었는가? 어느 정당의 주장처럼 그렇다면 보다 ‘실질적인 대북정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불시에 통합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정 기간 북한 주민들의 무작정 남행(南行)을 막고 그들에게 익숙한 배급체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통일이 우리 헌법하에서 이뤄지는 것일진 대 그들의 기본적 권리인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또 다른 일각의 주장처럼 그들을 집단화된 농원 등에 유치하자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저들은 바로 집단화체제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권리의 제한을 견딜 수 없어 남행을 결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동경 때문인 것이다.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 옹호의 문제는 우리 헌법이 통일을 위해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하나의 과제이다. 탈북자들의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 애써야 하고, 우선적으로 남쪽으로 온 탈북인들을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에 적응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불과 2000명의 사람들이 적응에 실패한다면 2000만명의 통합은 요원한 것이 된다. 유엔 인권담당관이었던 메리 로빈슨은 “오늘의 인권 침해가 바로 내일의 갈등”이라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벨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성공적인 민주화를 이끌어낸 한국의 많은 개인적인 친구들과 우리들에게 건투를 빈다고 축원했다. 내년 3월 회의에서는 대통령 관저인 유서깊은 프라하 성에서 북한 인권 필름의 상영을 포함한 성대한 모임이 계획되고 있다. 이제 우리들이 나설 차례다. 북한 인권문제와 통일에 대해 ‘실질적으로’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해결을 향해 다가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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