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대중은 여러 특징과 장점을 갖추고 있다. 그중 ‘김대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총명함이다. 그는 분명 머리가 뛰어난 정치인이다. 그는 아주 단호하면서 동시에 물러설 때는 더 없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었다. 그는 때로 포퓰리스트(populist)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 여론에 민감하고 또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그는 말을 바꾸는 경우도 꽤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행태를 가리켜 ‘거짓말’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이것을 ‘상황변화의 논리’로 치장한다. 어떻게 보면 그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말에 의한 자기 보호색’ 덕분이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그는 끊임없이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면서 충돌할 때는 충돌하고 우회할 때는 우회할 줄 아는 위기대처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치인이 그의 대통령 임기 후반에 들어선 요즘 어딘가 달라져 보인다. 우선 김 대통령은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는 매사에 교과서적인 원칙론을 제기하면서 융통성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그를 향해 ‘독재자’라고까지 극언하고 있다. 독재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는지 몰라도 김 대통령이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자업자득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 대통령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과정에서 그런 독단적인 개념을 연상한다.

그의 측근들이나 각료들이 그에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과거 역대 정권 때도 그랬지만 요즘 청와대 회의는 대통령이 ‘지시’하고 장관이나 비서관이 ‘메모’하는 ‘학습’의 모양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혼자서만 말한다는 비판을 들었는지 청와대에 초대된 외부인사들에게 전원 돌아가며 발언하도록 요청해도 대부분 아부성 헌사(헌사)일 뿐 이견(이견)의 목소리는 없다. 분위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대내정치에는 양보와 타협이 없어졌다. 권력자로서의 포용력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일생을 야당에 몸담았으면서도 야당의 입장과 처지는 까맣게 잊은 것같이 행동한다. 요즘은 야당이나 일부 언론이 자신의 발목이나 잡는다는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하고 있을 정도다. 그의 대북정책은 이제 비판이나 충고 따위는 필요없다는 식으로 집요하고 단호하게 치닫고 있다. 비판은 마치 자신의 대북업적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쯤으로 받아들이는 인상이다. 그것이 북한의 김정일이 북한을 좌지우지하는 스타일에 영향받은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정부내에서 그의 대북 페이스에 감히 시비를 거는 일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그의 정부는 의약분업 사태에도, 예금자보호법 논란과정에서도 융통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적어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도 범접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내부의 이야기다. 김 대통령 주변은 개혁을 합리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그것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입력시키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에도 순서가 있고 시기가 있고 추진의 강도가 있는 것이 당연한데 몇 가지 현안정책에 ‘개혁’이라는 표지가 붙기만 하면 거기에는 순서와 시기와 강도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앞으로 2년여를 싫든 좋든 김 대통령이 잡은 조타에 실려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의 정치역정과 과거 정치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지난날 보여줬던 합리성 총명성 융통성 양보성,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일반적 생각과 걱정을 헤아리는 대중성으로 되돌아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들은 김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기 생각만 되새김질하는 고집스러운 노(노)정치인으로 퇴행하기보다 국민들 사이로 나와 국민의 생각을 좇아 융통성을 보이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줄 아는 야당성으로 되돌아가 주길 바랄 뿐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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