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파멸 상태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마침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띄우는 것인가. ‘북한 속의 홍콩’ 건설을 목표로 한 신의주특구의 첫 행정장관에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華僑) 사업가 양빈(楊斌)이 내정된 사실과 그가 밝힌 특구 운영 구상은 파격적이다.

양빈의 구상대로라면 신의주는 완전한 ‘자본주의 도시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에 가장 개방적인 특구가 들어서는 이같은 ‘반전(反轉)’에 담긴 의미와 예상 효과를 정확히 읽어내기는 어렵다. 이것이 북한체제의 본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과 거부감을 불식시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장술인지도 좀더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북한으로서는 이제 돌아오기 힘든 개방의 첫 걸음을 내딛는 셈이다.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격이라는 비유가 적절한지도 모른다. 그만큼 개혁·개방은 시작할 때는 ‘내 뜻대로’지만 그 후엔 ‘내뜻’의 통제를 벗어나게 마련이다.

아울러 북한 당국이 신의주를 ‘외국인 조차지(租借地)’처럼 내주더라도 개방은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외국자본과 기술을 유인할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하부구조를 갖추는 일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갑자기 외국인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배할 신의주특구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북한 당국이 끝까지 불간섭 방침을 감내해 낼지도 두고 봐야 한다.

‘신의주 실험’이 순항(順航)하든 그렇지 못하든 북한 내부에 끼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보다 분명하게 설정하고, 그 구체적 방법들을 점검해 보아야 할 때다. 어떤 형태의 대북 지원과 협력이 북한의 진정한 개혁·개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성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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