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반도는 북한문제 해법과 관련해 두 개의 상충하는 국제흐름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편에서는 김대중 정부와 일본·러시아를 중심으로 ‘김정일 달래기’가 전개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북한을 ‘악의 축(軸)’으로 규정한 채 ‘김정일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가는 길’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며칠 동안 이 같은 두 개 흐름은 서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한반도평화를 위한 정치선언’을 채택하고, 미국 등의 대북대화를 촉구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라는 이름의 독트린을 발표해 북한을 계속 ‘불량국가’로 지목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해 단호하게 경고했다.

북한문제를 놓고 한·일이 비슷하게 가고 있고, 미국이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이른 시일 내에 한·미·일 공동이익의 틀 안에서 조율되지 않으면 안된다.

대화와 압박 중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가를 둘러싼 공연한 논쟁은 자칫 대북공조의 혼선으로 확대될 수 있고, 그것은 오히려 대북목표 달성에 차질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사실상 대화와 압박은 이 두 가지가 균형적으로 병행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대중 정부의 대미외교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현 정부는 북한문제와 관련한 한·미 조율에서 지금껏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미 모두 상대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측 입장에서 보면, 임기말의 현 정부가 열을 올리고 있는 남북대화는 “내 임기 중 빨리빨리…”라는 김 대통령 특유의 개인적인 정치 목표 집착으로 비쳐질 수 있다.

결국 김대중 정부가 이런 한·미간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5개월 남짓한 잔여 임기 동안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의 목록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국제·국내적인 합의와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대북대화와 북한위협 제거라는 두 개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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