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과 정부 당국이 경제 위기감을 함께 갖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한국 경제와 안에서 느끼는 한국 경제 사이엔 여전히 적지 않은 온도차가 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시각의 격차는 위기의 심각성에 관한 것이다. 서울에서 전해오는 소식에는 경제가 망했다는 표현이 난무한다. 과장법에 익숙한 한국인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밖’보다는 ‘안’의 위기감이 훨씬 심각해 보인다.

예를 들어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 포기를 한국 경제 전체의 위기로 연결시키는 의견을 이 곳에서 듣기란 좀체 힘들다. 아시아 국가 중 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났다는 평가와 그 덕분에 얻는 ‘약발’은 아직 남아있으며, 이번 주 뉴욕증권거래소가 주택은행의 직상장을 허용함으로써 한국이 통째로 구제 불능의 위기 속에는 빠져들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월가나 국제 금융기관들은 물론 한국이 북한의 경제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특히 엄청난 부실 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 관찰(코리아 워치)은 요사이 더욱 예민해졌다.

그러나 아직은 위기국면이라고 단정하지 않은 채 꼼꼼히 지켜보는 ‘예의 주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월가나 국제 펀드들의 민첩함과 무자비함이다. 그들은 한국이 만약 기대하던 길로 가지 않으면 가차 없이 위기 속에 몰아넣을 수 있다. 지켜보는 기간도 고작 몇 달이나 몇 분기 정도일 뿐, 몇 년까지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안과 밖의 또 다른 시각차는 위기돌파의 주체 세력이다. 한국서는 야당이 대통령과 집권당을 비난하고, 여당 내에선 경제팀을 맹비판하는 광경이다.

반면 밖에서 주목하는 것은 한국 전체이고 정치권 전체이지, 여당이나 경제팀만은 아니다. 과연 야당이 구조조정 비용(공적자금)을 허용해줄 것인가, 정치인이나 재벌, 상류층들이 외화를 해외에 도피시키는가, 남북 화해는 한국 투자에 매력적인 요인인가….

이는 월가가 쓰라린 실패에서 배운 교훈이다. 남미에서 정치권이 불안하고 정권교체가 잦은 나라일수록 외화유출이 심하고 위기가 반복되는 빈도수가 높았다. 한때 시카고 대학 출신 경제학자들이 남미의 경제 정책을 장악, 월가도 이를 적극 지원했지만, 결국 남미에서 정치 불안의 벽을 넘지 못해 미국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이 때문에 월가는 위기 돌파의 주체로 집권당과 정부를 1차 주목하지만, 그 나라 야당과 반정부 세력, 노동 단체들이 위기 때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찰한다. 3년 전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기 앞서 협정서에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대통령 후보들의 서명까지 받아갔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과 밖의 또 다른 시각 차이는 위기 처방이다. 서울에서는 “청와대와 집권당은 뭣 하느냐”는 재촉이 폭발하면서 경제 관료들이 때를 만난 것처럼 칼을 들고 나섰지만, 밖에서는 관(관)주도가 아닌 민간 자율의 구조조정을 기대하고 있다.

3년 전엔 처음이라서 정부 주도의 개혁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엔 과연 은행들끼리 스스로 합병·인수를 추진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퇴출 대상기업도 정부가 손을 대기 전에 채권단이 알아서 문을 닫고, 부실 금융회사들도 장관들이 모이기 전에 채권단과 주주들이 먼저 모여 경영진을 갈아치운 후 정부에 공적자금 지원을 간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정치권 주도나 관료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면 남미처럼 실패의 사이클을 반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관료들이 연말 이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마감날까지 정해놓은 후, 대폭발(빅뱅) 방식으로 단칼에 해치우려고 설치는 모습을 밖에서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빅뱅식 구조조정은 러시아에서 처참하게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워싱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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