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온전한 삶’을 살 수가 없죠.”

이영욱(70·변호사) 전 의원은 작년 2월에야 미국 MIT대 재학 중 지난 87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다 납북된 장남 이재환(당시 25세)씨의 사망통지서를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두번이나 집을 옮겨야 했고, 15년이 흐른 지금도 불면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이 전의원이다. “추석에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아들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습니다.”

해군에 복무하던 지난 70년 연평도 부근에서 납북된 정광모씨 집안도 풍비박산했다. 체육계 원로였던 아버지 정인위(96년 작고)씨는 지난 71년 한·일 체조선수권대회에 선수단장으로 방일, 아들 소식을 수소문하기 위해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혐의로 5년 간 옥살이를 했다. 치매증세로 고생하던 어머니 홍성랑씨도 지난 5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광모를 보고 죽어야 하는데”라며 끝내 아들을 못 잊어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북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보도를 접한 국내 납북자 가족들은 하나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몇 년 간 ‘퍼주기’식 지원을 해주고도 북한 측에 납북자 명단, 생사확인도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생존자는 송환하고 사망자는 사망일시·장소·원인을 밝혀 유골·유품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정부로서의 최소한의 책무가 아니냐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졌다.

국내법상 특수체포·감금, 살인에 해당하고 국제법상 ‘반(反)인도주의적 범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자들을 반드시 단죄(斷罪)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러한 납북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당국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 琴元燮·사회부기자 caped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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