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북회담에서 3월 말쯤으로 예정됐던 고위급회담이 유야무야되면서 양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테러지원국 해제문제 등 세 가지 주요 현안에 대한 ‘각론’을 먼저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양국은 지금까지 이 현안들을 각각 별도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발빠른 남북관계 진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에 빠진 미·북관계의 실마리를 푸는 작업은 결국 미국의 차기 행정부 몫으로 넘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비등해진 시점에 파격적인 ‘총론’ 접근으로 다시 선회한 것은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양국의 이해가 극적으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방위적 외교 확대에 나선 북한으로서는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며 제동을 걸고 있는 미국이 걸림돌이다. 북한을 아직도 테러리스트 지원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은 더구나 대북(대북) 경제지원의 키를 쥐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에둘러서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그간 공화당의 비판항목 중 하나였던 대북 포용 정책의 주도권을 다시 한번 가시화할 수 있는 이벤트다. 시점도 11월 7일 대선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다.
이번 고위급 회담의 핫 이슈는 양국간 관계정상화다. 북한 서열 3위인 조명록(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에 건너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실질적인 논의’를 하게 될 경우 그 상징하는 바도 작지 않지만, 양국간 관계 개선에 큰 디딤돌을 놓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 양국간 현안이 사실상 주로 군사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조명록의 방미가 향후 양국간 현안 타결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내적으로 군부 설득을 위한 목적을 겸해 조 부위원장을 특사로 선정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큰 틀을 짤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고위급 회담이 각론인 현안들의 자동적인 해결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추후 별도의 양국간 실무회담을 통해 논의될 예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회담이 일과성으로 그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북한이 과거 주장해 왔던 것처럼 평화협정 체결 등 군사문제를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 단독으로 처리하려고 나설 경우 미국과 한국을 긴장시킬 수도 있다. 미국은 현재 긴장완화를 위한 북한의 가시적인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