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울프(Charles Wolf). 60년대 초반 경제개발계획의 입안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울프 박사는 당시 랜드(RAND)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우리나라가 처음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의 외국평가단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당시의 국·과장 이름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을 지켜봐 온 산 증인이다. 랜드연구소 수석경제고문 겸 연구위원인 찰스 울프 박사가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해 경제과학부 최성환(최성환) 전문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편집자

―한국이 IMF위기 이후 급속하게 회복하다 요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국은 급속한 회복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표현해 오다 최근 유가급등 및 금융시장 불안 등이 겹치면서 위기감이 다소 과장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회복세는 유지될 것으로 믿는다. ”

―그럼 한국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아직도 재벌문제 등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그러나 위기를 겪으면서 대출과 투자의 기간불일치(maturity mismatch)의 위험성,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중요성, 일본형 개발모델의 한계성 등에 대한 교훈을 얻었으므로 똑같은 잘못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

―재벌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한국의 재벌들은 조직의 복잡성으로 인해 투명성, 개방성, 기업지배구조 등이 글로벌 기준에 비해 매우 낮다. 이는 대우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재벌들은 과거에 집착하려는 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적 관계가 아니라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the price matters) 경영이 되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모든 기업을 공평하게 가격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면 재벌에 대한 각종 차별 또는 역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

―최근 남북정상회담 등 화해무드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경협이 여러 경로를 통해 논의되고 있다.

“경제협력(economic cooperation)이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 골라 써야 한다. 지금처럼 남한에서 북한으로 일방적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원조(subsidy by goodwill)라고 해야지 경협이라고 할 수 없다. 경협은 돈이 수익을 따라 양방향(two-way flows motivated by profits)으로 오가는 것이다. ”

―그럼 경협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주고받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변해야 한다. 북한이 국내총생산(GDP)의 30~40%를 국방비에 쓰고 100만명이 넘는 병력을 유지하면서 경협이 이뤄질 수는 없다. 실질적 의미에서의 경협이 되기 위해서는 국방비와 병력을 줄여 그 여력을 철도 및 공단건설 등 평화적·비군사적·경제적 목적으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남북대화에서 이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이상할 정도다. ”

―최근 북한이 개방적인 태도로 나오는 배경은?

“아직 북한이 개방적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 북한은 개방하겠다고 언급한 적도 없다. 다만 경제문제의 악화로 더 이상 내부 불만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대외적 도움을 받으려 하는 것 같다. 과거 50년간의 북한의 행태를 미루어 보면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음에 주의해야 한다.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다. ”

―한국의 통일방식에 대한 견해는?

“개인적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의 한국을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독일식의 통일보다는 점진적인 통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일식의 예기치 못한 통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그에 대한 준비는 해둬야 한다. ”

―독일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을 든다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화폐교환비율을 정치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 구매력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복지 등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북한주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

―점진적인 통일에도 전제조건이 있지 않겠는가?

“가장 큰 전제조건으로 양쪽의 소득수준차이의 해소를 들고 있는데 소득수준이 비슷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한 해에 8~10%의 성장을 계속, 소득수준이 지금의 2배 정도가 되는 6~8년 이후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

―통일비용은 얼마나 들 것으로 보는가?

“세계은행(World Bank) 등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조~3조달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북한이 어떤 식으로 경제재건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통일비용은 달라진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생각보다는 훨씬 낮을 것이다. ”

/최성환전문기자·경제학박사 sung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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