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태극기를 일절 볼 수 없게 됐다.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와 인공기(人共旗) 대신 한반도기가 올라간다. 우리 선수들 가슴에도 태극 마크 대신 한반도기가 새겨진다. 관중석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고, 태극기를 갖고 온 관중들은 경기장 입구에서 한반도기와 바꿔야 한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북한은 경기장에 태극기가 걸리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고집했고, 우리 측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행사인 만큼 태극기와 인공기를 모두 배제하자는 취지이고, 90년 남북한 교환 축구경기 때의 선례가 고려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부산아시안게임이나 남북축구대회에서 가급적 태극기를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민족화합의 이벤트를 위해 태극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태극기를 분단의 상징이나 민족화합의 걸림돌로 격하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북한선수가 온다고 해서 대한민국 경기장에 태극기를 내걸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나타내는 최고 상징인 태극기는 그 의미가 모호한 한반도기로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존재다. 현단계에서 남북화해는 우선 남과 북이 상호 실체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남북 만남의 장(場)에서 태극기는 오히려 그 위상이 강화돼야 한다.

북한이 굳이 ‘태극기가 있는 곳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깊이 새겨보아야 하는 것이다. 평양경기장에 인공기가 걸렸다고 해서 우리 측은 경기를 포기하겠는가.

남북은 앞으로 국기 문제에서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해 가급적 양측 국기를 그대로 두고 사용범위를 협의해야 한다. 그것이 현단계에서는 오히려 화해와 공존 의지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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