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는 약 50명의 탈북자들이 들어와 한국행을 요구하고 있고 이 중 21명이 6일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올 예정이다. 베이징 독일인학교에도 15명이 들어가 있다. 사흘 전에는 12명이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려다 중국경찰에 체포되거나 도망쳤고, 열흘 전에는 7명이 중국외교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이러한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탈북자들의 집단망명 러시가 이제 분명한 대세로 굳어졌고, 이것은 어떤 물리력으로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개인들의 단순한 ‘도주사건’이 아니라 북한 민중의 생존권 투쟁이자 체제이탈 투쟁, 자유민권 투쟁의 초기 형태인 것이다. 아울러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지향하는 남북 동포들의 만남과 합류를 향한 대이동인 셈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중국당국은 다시 탈북자 비상경계령을 내려 단속을 강화하고 이들을 돕는 인권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당국의 이런 태도는 국제여론을 자신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만들 뿐이다.

중국당국은 인권단체들의 이른바 ‘기획망명’을 비난하고 있지만, 인권단체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대다수 탈북자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가혹한 조치를 가하고 있는지부터 되돌아 보아야 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강경책은 더욱 조직적이고 치열한 저항만 자초할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정부의 태도다. 공관에 들어온 탈북자들만 챙길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대다수 탈북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시도에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누군가 먼저 나서야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한국정부라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