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26일 양일간 제주도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뒷받침하는 몇몇 군사적 합의를 도출하게 된 것을 의미있게 생각한다. 우리 측은 이번 회담에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문제도 다루기를 원했지만, 북한측은 의제를 경의선 복원 관련 문제로 국한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제야 어떠하든 이번 남북 국방장관 회담은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중요한 행보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사실상 남북한이 직접 군사접촉을 가진 경험은 일천하다. 1990년 7월 26일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시 박종권 공군소장과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의 만남, 8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의 정호근 합참의장과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 등 남북고위 장성의 접촉, 그리고 남북핵통제공동위, 남북군사분과위에서 24회에 걸친 회담 등이 있어 왔다.

그러나 1992년 9월 5일 이후 더 이상 남북한 군사접촉은 없었다. 이번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그 동안의 단절적 상황에서 벗어나 남과 북의 군 당국 책임자가 처음으로 직접 회담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군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한반도 평화 및 안보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하여 일부의 비판적 여론이 일기도 하였으나, 이번 남북 국방장관회담으로 6·15 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취해지고 있는 활발한 남북대화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즉 남북한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후속조치 이행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와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간다는 데 합의한 것은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조치를 위한 협상의 토대를 마련하였음을 의미한다.

양측은 10월 초 경의선 연결 관련 군사실무 접촉 및 11월 중순께 2차 남북 국방장관급 회담 개최에 합의함으로써 남북한 군사접촉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조치는 향후 정례화될 가능성이 짙은 남북국방장관 회담과 경의선 철도 연결 및 도로공사와 관련한 군사실무 접촉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국방장관회담 및 기타 군사접촉을 통해서 북한의 대내외적 현실을 고려하면서 점진적으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협의하기 위한 틀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은 ‘군사국가화’되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스스로도 그의 힘은 ‘군력(군력)’에서 나온다고 말한 사실을 상기할 때, 북한에 있어서 군사문제는 체제유지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북한은 그들의 군사력을 변화시키는 어떠한 직접적인 조치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또한 북한은 그들의 군사력을 대외 협상력 제고를 위한 중요한 카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분야에서의 협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중하게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군사적 신뢰구축과 관련한 ‘교과서적’인 제 조치들을 조급하게 요구하기보다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남북한 군사적 접촉의 필요성을 동반하는 협력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이를 통한 실질적인 군사적 접촉의 기회를 늘려나가면서 군사적 신뢰구축 노력의 기회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경의선 연결과 도로건설 관련 군사접촉에 대해서 북한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면 고무적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러한 군사접촉이 바로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의 하나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지금의 남북대화 불씨를 잘 살려나가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 영 태/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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