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을 겪은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9월20~23일)의 합의내용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경구(경구)가 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아마코스트 회장이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대소(대소) 협상 때 한 말을 원용하여, 대북 협상의 기본은 “믿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충고한 대목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가시적 성과인 8·15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으로 공동선언에 대한 믿음의 벽돌 한 장이 놓였다. 더욱이 지난 추석엔 김용순 노동당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남한에 와서 우리 측과 협의 끝에 9·14 공동보도문을 발표함으로써 그 믿음에 무게를 보탰다. 공동보도문 제3항은 이산가족의 생사·주소 확인작업을 “9월 중 시작하여 이른 시일 내에 마치기로” 하며, 이들 중 생사가 확인된 사람부터 “서신교환 문제를 우선적으로 추진키로” 다짐하였으니 말이다. 얼마나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낭보였던가.

그러나 9·14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지 열흘도 안 되어 그 믿음의 귀퉁이가 일그러졌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회담은 9·14 공동보도문에 훨씬 못 미치는 흉작에 그쳤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검증’의 병립성을 되새기면서 북한의 속셈을 검증해 볼 필요를 느낀다.

이번 적십자회담에서 북측 대표의 말을 보면, 이산가족들의 생사·주소 확인이 매우 버거운 작업인 듯 보였다. 50년의 세월, 타의든 자의든 원격지로의 분산 대량이주, 북한 전역의 전산망 미비 등을 감안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우리의 요구 일부를 접어들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소박한 추단이다. 8·15 이산가족 방문단 선정과정의 실증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남측이 200명의 후보자 명단을 북측에 통보했더니 북한은 열흘 만에 138명에 대해 생사확인 회보를 보내왔다. 69%의 성과였다. 또한 찾아달라고 의뢰한 친인척 가족수 1201명에 대해서는 849명의 생사여부를 확인·회보해왔다. 71%에 달하는 실적이다.

이 같은 70% 안팎의 확인 수치 외에 재북가족 중 “관심없다”고 고개를 돌린 사람, 북한당국이 정책적으로 배제했을 사람들까지를 합산한다면 적어도 80% 정도는 열흘 이내에 찾아냈다고 추산해도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북측이 “빨리 찾기가 역부족(력부족)”이라고 한 말은 자가당착이 되며, 이산가족 문제에 곁들여 다른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버리기 어렵다.

‘검증’이란 트집잡기가 아니라 결손부분을 보전하기 위한 원인 규명과 해결책 도출에 참뜻이 있으므로, 생사확인·서신교환·면회소 운영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진척시키려면 우리 측이 슬기로운 방안을 강구하여 유도해야 한다.

북한의 행정구역은 8·15광복 당시 97개 시·군이었으며 월남한 이산가족들은 각자의 고향을 그 틀 속에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확인 신청자가 100명이라면 시·군 단위로 평균 1명꼴이 된다.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군이 200여개로 늘었으므로 1회마다 신청자 100명이면 2개 시·군에 평균 1명씩이 된다. 1~2개의 시·군역(역)에서 1명치의 가족을 찾는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행정·기술·인력상 낭비적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러므로 남측에서 100명 단위로 매월 확인 요청을 하게 되는 경우 도마다 1개 시·군씩을 선정하여 몰아서 실시하면 쌍방 모두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 양태를 바꾸어 1개 도 단위로 집중하여 윤번제를 준용하는 것도 좋다.

그밖에도 효율적 방안을 착상할 수 있겠지만 해결의 열쇠를 북측이 쥐고 있으니 이산가족 문제의 향방이야말로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북한의 진의를 가늠하는 풍향계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 경 남 /한국발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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