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저명한 국제문제전문가이며 헤센 평화 및 갈등 연구소장인 프랑크푸르트대 하랄트 뮐러(51) 교수가 3박4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26일 오후 이한(리한)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된 그의 저서 ‘문명의 공존’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유럽지성의 시각에서 통렬히 반박,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뮐러교수를 26일 오전 한신대 이해영(이해영ㆍ39ㆍ국제관계학)교수가 만나 대담을 나눴다.

이해영교수=미국 정치학의 영향이 강한 한국에서 독일학자의 저서가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글의 성향으로 본다면 독일 사민당의 입장과 유사한데, 당적을 갖고 계십니까.

뮐러교수=일단 제 책에 대한 반응이 좋다니 기쁩니다. 정당활동은 폭넓은 학문활동에 방해가 됩니다. 전 무당파(무당파)입니다.

이해영=헌팅턴은 미국과 유럽의 ‘문명적’ 동맹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유럽대륙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군사전문가이자 유럽인으로서 특히 코소보사태 이후 양자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뮐러=코소보 사태 이후 유럽내에서는 미국의 독점적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세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유럽국가들은 특히 안보분야에서 대미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해영=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뮐러=문명이란 개념은 기술발전, 경제운용방식, 통치체계, 사회구조, 법체계, 가치체계 등을 포괄합니다. 그러나 헌팅턴은 문명을 가치체계, 그것도 종교를 결정적인 척도로 삼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분석틀로 복잡한 국제문제를 본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이해영=거칠게 말해 헌팅턴의 구상은 지극히 반이슬람적이며 또한 반중국적입니다. 특히 당신이 ‘문명의 공존’에서 집중 비판한 것처럼 그것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서구인의 위기의식을 교묘히 자극하고 동원한다는 점에서 ‘대중영합적’이기까지 합니다.

뮐러=바로 그 점에서 저는 헌팅턴의 생각이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는 한편에 서구, 다른 한편에 회교-유교세력을 설정하고, 양자가 절대 화해할 수 없으며, 대립적임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황화론(황화론)처럼 전환기 서양 백인의 두려움을 근거없이 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비서구사회에 대한 몹시 공격적인 발상입니다.

이해영=그렇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적(적) 설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분명 헌팅턴의 주장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남북한의 통일과 미래라는 입장에서 볼 때 헌팅턴의 주장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일부에서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은 바그다드, 베오그라드에 이어 미국공군의 3번째 폭격목표가 평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뮐러=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됩니다. 미국은 남한 외에 일본에도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고 막강한 함대를 통해 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관련해 미국은 신중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바그다드나 베오그라드와는 달리 북한과의 전쟁은 리스크가 너무 크고, 또 이런 군사행동은 미국이 전혀 원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 간의 접근을 초래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에 의한 간헐적인 힘의 과시마저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영=2년 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온건정책이라 할 수 있는 햇볕정책 혹은 포용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북한정권의 반응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뮐러=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생존, 그리고 권력엘리트의 권력보존에 있습니다. 남한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북한으로서는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렇다고 제2의 한국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국내정치적 목적에서 ‘적’이 필요할 뿐입니다. 일정 수준의 긴장과 자극은 계속되겠지만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의 반미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에게는 전쟁 지원국가가 없는 셈입니다.

이해영=당신은 책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시아의 자유로운 정치 발전은 중국에 대한 공포가 없을 때에만 가능하다…하지만 중국이 세력확장의 길을 택한다면 서구, 특히 미국은 중국이 국가와 국민의 평화로운 공존을 택할 때까지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 이 주장은 ‘통일 후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것입니까.

뮐러=먼저 중국이 영토문제에 관한 한 언제나 비타협적 태도를 취해왔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코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중국이 주변국들에 대해 선린정책을 취하면 미국의 역내 영향력은 감소될 것이고, 반대라면 미국의 영향력은 증대될 것입니다.

이해영=당신은 IMF, OECD, 세계은행 등 국제경제기구의 역할이 문명의 네크워크화를 위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기서 당신은 특히 90년대에 세계각지에서 위기와 갈등을 첨예화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와 남북반구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문제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뮐러=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미래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는 특히 복지와 같은 ‘사회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죠. 남북간 격차의 심화 역시 통계적으로 받아 들이기 어렵습니다. 인도의 예에서 보듯이 후발산업국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좋은 사례입니다. 물론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의 최극빈국(LDCs)의 상황은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이해영=우리는 이제 IMF의 긴 터널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조금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위기재발의 우려도 있습니다. 97년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위기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뮐러=지금 시점에서는 오히려 긍정적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는게 좋을 것같군요. 사실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저는 ‘긍정적’ 후유증을 말하고 싶습니다.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전의 구조조정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경제가 더 튼튼해 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제위기의 원인도 단순히 외부의 신자유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엘리트의 오류도 이에 못지 않다고 봅니다. 독일의 경우에도 고실업에서 보듯이 문제는 먼저 개혁을 하지 못한 정치엘리트의 무능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남탓만 하지 말고 자기 반성도 함께 해야합니다.

이해영=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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