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어제 발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및 일·북 정상회담 개최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 전개다. 지난 7월 이후 일·북관계가 일정한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공식 외교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총리가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위험을 감안할 때, 일·북 간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밀 협의가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당연히 제기되는 의문이 일·북간에 오고간 협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전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미·일 3국 공조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나타난 한·미 정부의 반응을 볼 때 충분한 사전 협의가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한·미 정부에 대해 북한과의 협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정상회담의 의제 및 대책 등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요한 문제가 회담 의제다. 일본인 납치 문제 같은 일본 국내적으로 중대한 현안들도 다뤄져야 하겠지만, 한반도 평와와 안전에 관한 문제 역시 소홀해서는 안된다. 북한 핵·미사일부터 한반도 긴장완화 방안 같은 문제까지 한·미·일 3국의 공통된 인식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일·북 정상회담을 국제적인 대북(對北) 핵·미사일 포기 압박을 각개격파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 이 기회에 한·미·일 3국 공조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한·미·일 공조가 대북 정책의 목표와 추진 방법 등에서 심각한 부조화를 노출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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