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추진위원회가 4일간의 서울회담 끝에 30일 내놓은 합의사항들은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추진할 수 있는 경제분야의 실질문제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으며, 향후 추진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데 이르렀다.

물론 아무리 구체적 표현으로 만든 남북간 합의일지라도 북측의 일방적 계산과 트집으로 어느 한 순간에 뒤집혀 온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고, 이번 합의 내용들도 대부분 옛것의 재탕 삼탕이라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분명한 근거는 없다.

다만 지금 북한은 내부적으로 체제운명을 걸다시피 한 이른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도하고 있고,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부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 대외 환경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사실은 유념할 만하다. 북한의 합의사항 실천의지가 과거와는 조금이라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여건인 것이다.

이번 합의의 골자는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공사 착공 날짜를 못박는 대신, 우리가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철도의 연결은 남북간 긴장완화와 경제협력을 위한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사업일 뿐 아니라, 공사 주체인 양측 군사당국간에 지속적인 접촉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북측의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을 재개하고, 철도연결 사업에 필요한 330여억원어치의 자재까지 우리가 제공키로 한 것은 비판과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 정부가 연내에 경의선 연결공사를 끝내겠다는 목표하에 조기 착공에 집착하고, 그래서 북측에 선심을 쓰는 것이 만에 하나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현 정부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남북관계에서 하나라도 더 이루어 놓겠다고 서두르는 것이야말로 북측이 가장 원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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