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전화번호부는 191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로 13㎝, 세로 19㎝ 크기의 이 전화번호부는 경성·인천·용산의 3개 우편국에 등록된 4000여개의 전화번호를 관공서 관리 등 43개 분야로 나누어 싣고 있다.

전화번호는 한 자리에서 네 자리까지이고, 이완용의 번호는 464였다. 일반인 중에는 극장·양복점·음식점 등을 소유한 재력가들과 일본상인들이 많다.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전화번호부가 일반인들은 가질 수 없는 일종의 비밀문건으로 돼 있다. 해외반출은 엄격히 금지된다. 이런 북한 전화번호부가 요즘 일본에 유입돼 전문가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고 미국 타임지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1995년판인 이 전화번호부는 373쪽으로 기관 전화번호 5만개가 실려 있어 북한전문가들에게 소중한 ‘정보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화번호부에서 평양의 정부기관 번호는 18쪽에 달하지만 식당 번호는 단 한 쪽에 불과하다. 김정일 집무실이나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3호 청사’, 국가보위부 등은 물론 빠져있다.

타임지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토대로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는 전화는 ‘지역번호+82’이며, 이 전화는 24시간 열려있다고 전했다. 화재신고는 북한에서도 ‘119’이고, 전화번호 안내는 평양시내는 ‘128’, 시외는 ‘125’이다.

▶북한에서 전화는 사실상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당간부의 집 전화도 업무용 성격이다. 최근에는 개인도 돈만 내면 전화를 설치할 수 있게 됐지만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공중전화는 평양에만 있다. 지방의 한 노동자가 다른 지역 노동자에게 전화를 걸려면 기업소 전화, 군(郡)전화국, 도(道)전화국을 거쳐 상대지역의 도·군·기업소를 연결해야 한다. 신청해 놓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95년판 북한 전화번호부는 얼마 전 국내에서도 전문가들의 분석을 거친 적이 있으며, 2001년 북한연감(연합뉴스)에 전량이 수록돼 있기도 하다. 외신 보도들이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어쨌든 전화번호부 하나를 보물 다루듯 해야 하는 북한전문가들의 처지가 안쓰럽다. 학교 교과서마저 해외반출을 엄금하는 북한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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