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勝俊

한·중(韓中)수교가 24일로 10주년이 됐다. 우리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10년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30년이면 한 나라의 운명이 변한다”고 말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살림살이가 중국보다 조금 낫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차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요즘 추세대로라면, 중국사람들의 말대로, 앞으로 20년 뒤 두 나라 살림살이 우열은 뒤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베이징(北京)거리에 한국사람들이 나서면 옷차림만으로 중국사람과 금방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별이 쉽지 않다. 중국사람들이 우리만큼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년 뒤면 오히려 중국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색상 좋고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닐지 모를 일이다.

옷차림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정책의 차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남북으로 쪼개져 있고, 중국도 대륙과 대만으로 갈라져 있다. 우리가 보기에 우리의 분단이나 중국의 분단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10년 전 베이징에 갔을 때 중국외교관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서로 나뉘어져 있는 점은 같지만 원인은 서로 다르다. 너희 분단은 냉전(冷戰)의 산물이고, 우리는 내전(內戰)의 산물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자존심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고 보니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건 바로 통일정책을 두고 한 말이었다.

우리 분단은 냉전의 산물이므로 수퍼파워들 간의 타협이나 유엔의 중재가 필요하지만, 자기네 분단은 내전의 산물이므로 다른 나라나 유엔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 자기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었다.

한·중수교 1년3개월 전인 1991년 5월 27일 북한 외교부는 유엔에 가입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조선(북한)의 유엔 가입 성명을 지지한다”는 공식논평을 발표했다. 넉 달 뒤인 9월 17일에는 우리의 유엔가입안이 통과됐다. 중국은 우리의 유엔가입도 환영했다.

그러나 자기네 분단은 ‘내전의 산물’이라는 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중국대륙과 대만의 유엔 동시가입이라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자기네들은 유엔 동시가입의 길을 가지 않았다. 중국은 대만의 유엔가입을 철저히 봉쇄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우리의 분단과 자기네 분단을 별도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의 정책은 한반도 남북을 부르는 호칭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정착시켜가고 있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 중국사람들은 한반도 남북의 호칭을 ‘남조선’ ‘북조선’ ‘남한’ ‘북한’ ‘한국’ ‘조선’ 등 여러가지로 부르며 헷갈려 하곤 했다.

하지만 수교 10년이 흐르는 사이 ‘한국(韓國·한궈)’과 ‘조선(朝鮮·차오시엔)’으로 굳어졌다. 중국 외교부의 웬만한 문서에서도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신 ‘한국’과 ‘조선’을 공식명칭화하고 있다. 지도에서도 ‘한국’과 ‘조선’으로 깨끗이 정리했다.

물론 남북한 평화공존을 위한 유엔 동시가입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과 대만이 우리보다 빨리 통일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중국이 우리를 별개의 두 나라로 고착시키려는 의도만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중국 전문기자 sj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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